가혹한 뇌전증 장애 기준

가혹한 뇌전증 장애 기준

2008년 미국 대법원 인정 
글‧홍승봉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명예교수(강남베드로병원 뇌전증-수면센터장)

기사승인 2025-04-21 09:08:03

뇌전증은 간헐적으로 뇌신경에 과도한 전류가 발생하여 팔, 다리를 떨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발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정상인과 같아서 일반인과 공무원들은 뇌전증 장애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장애인 기준은 신체 장애(팔, 다리 마비)와 지적장애는 장애 정도를 크게 평가하는 반면 뇌전증 발작의 장애 기준은 가혹할 정도로 높아서 일상생활에 장애가 극심한 뇌전증 환자들도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증 장애가 경증 장애로 떨어지면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뇌전증 환자는 전국에 약 36만 명이 있고, 그 중 30%인 12만 명은 여러 가지 항뇌전증약을 복용하여도 뇌전증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다. 하지만 뇌전증 장애인 등록은 1만 명도 안 된다. 

2023년 등록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뇌전증 장애인 수는 전체 장애인 수의 0.3%인 7021명이다. 전체 장애인 수는 264만2000명이며, 이 중 지체 장애인이 43.7%로 가장 많고, 뇌전증 장애인은 0.3%로 가장 적다. 뇌전증 장애 기준은 너무 가혹하다. 

뇌전증 발작은 6개월에 한번 발생해도 차운전을 못하고 직장에서 바로 해고된다. 일상생활에 장애가 극심하다. 또한 뇌전증 진단을 알리면 취업 서류 심사에서 대부분 떨어진다. 뇌전증 장애 등록이 없으면 취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2가지 이상의 항뇌전증약을 복용하여도 1년에 2회 이상 의식을 잃는 발작이 발생하거나 6개월에 2회 이상 신체 동작의 장애(행동이나 말을 하지 못함)를 동반하는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는 뇌전증 장애 등록을 할 수 있고, 6개월에 1회 이상 전신경련발작이 발생하거나 한 달에 1회 이상 의식을 잃거나 신체 동작의 장애를 동반하는 발작이 발생하는 중증 뇌전증 환자들은 중증 장애인으로 등록되어야 한다. 왼팔이 완전 마비가 되면 일부 생활의 장애(양손을 사용해야할 경우)는 있지만 장애 등록이 되므로 취업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뇌전증 발작은 드물게 발생하여도 취업이 어렵고, 차 운전도 못한다. 정신장애 기준과 같이 생활 능력 상실, 사회적 적응력, 동반 우울증 등도 뇌전증 장애 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 대법원은 2008년에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뇌전증 발작을 장애로 인정했고, 미국 장애인 헌장 개정법(ADA amendments Act of 2008)에 모든 뇌전증 환자들을 포함하는 뇌전증 장애인 헌장이 추가됐다. 미국 장애인 헌장은 직장에서 차별을 막기 위해 뇌전증 질환이나 증상에 대해 물어보지 못하게 규정한다. 발작이 발생할 경우에도 해고가 아니고 환자가 근무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후 뇌전증 발작 시 해고가 크게 줄어들었고,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늘어났다. 

일본의 모든 뇌전증 환자들은 독립생활지원법(2006년 제정)의 혜택(의료비 10%만 부담, 취업 혜택 등)을 받는다. 한국도 가혹한 뇌전증 장애 기준을 크게 완화하고, 뇌전증을 포함하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개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 세계 12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뇌전증협회가 한국의 이 활동을 크게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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