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이 시장 불안을 키우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달러는 약세 흐름을 보이는 반면, 금과 엔화는 자금 유입 속 나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39엔대를 기록하며 140엔선을 하회했다. 엔·달러 환율이 140엔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24년 9월 이래 7개월 만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속 달러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피난 자금이 엔화로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엔화 강세에 불을 지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최근 “현재 실질금리가 매우 낮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에 오는 24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예정된 미일 재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에 금리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엔화 강세 폭을 키우고 있다. 금리 인상은 통화가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일본계 은행의 해외 대출이 줄고 투자자금이 본국으로 환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에서 이탈한 돈이 엔화로 쏠리는 흐름”이라며 “원·엔이 140엔 이하로 떨어지며 연말까지 원·엔은 1020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금값도 파죽지세로 치솟고 있다. 금 현물 가격은 21일 34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2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3500달러를 넘기며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금값은 연초 대비 약 30%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 이후 약 8% 상승한 상태다.
금값 급등의 배경에는 미·중 무역갈등, 지정학적 불안,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 인플레이션 우려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통상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이 커지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강화된다. 금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향해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이 ‘셀 아메리카(Sell USA)’ 흐름을 가속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이 미국 주식, 채권, 달러 자산의 매도를 유도하면서,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단기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투자자의 ‘안전 피난처’ 수요를 거듭 확대했다”며 “변덕스러운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은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고 같은 기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다변화 차원의 금 매수’세까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달러화 급락 현상은 글로벌 자금의 미국 자산 탈출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며 “(달러 급락의 여파로) 금과 비트코인, 엔화가 동반 강세 현상을 보이는 것은 달러를 대체할 자산으로 자금이 몰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했다.
금과 엔화가 서로를 자극하며 장기적 랠리를 이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며 “올해 초부터 꾸준히 상승 흐름을 보여온 ‘금·엔화·장기채권’ 조합은 당분간 강세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