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넘는 바둑리그 역사에서 난생 처음 보는 진기한 광경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연출되고 있다.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행 막차를 탄 ‘마한의 심장 영암’이 주인공이다. 영암은 주장 안성준 9단의 결과와 팀 승패가 일치하는 ‘안성준 공식’, 5국까지 가면 무조건 승리하는 ‘5국 필승’ 공식을 정규시즌을 넘어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언제나 밝은 분위기와 끈끈한 팀워크가 인상적인 팀, 마한의 심장 영암을 이끌고 있는 한해원 감독은 24일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돼 당연히 매우 기쁘다”면서 “저는 저희 팀 선수들이 진짜 우승을 하기에 충분한, 굉장히 훌륭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이어 한 감독은 “이 기세를 몰아, 이제 정말 챔피언결정전까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영암은 지난 22~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펼친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 수려한 합천을 2-0으로 제압했다.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오른 영암은 준PO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규시즌 3위로 어드밴티지를 받은 합천은 한 판만 이겨도 PO에 오르는 유리한 고지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합천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영암은 보기 좋게 예측을 깨뜨리고 진격을 이어갔다.
한 감독은 “저희 팀이 저력 있는 강력한 팀인데 외부에서 조금 약하게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준플레이오프 승리로 우리 팀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선수들의 자신감도 살아난 것 같아 그 부분이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준플레이오프 두 경기는 바둑리그 ‘홍일점’ 감독인 한해원 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승부였다. 1차전 2-1 상황에서 합천 3지명 박하민 9단의 등판을 예상한 한 감독은 5지명 조한승 9단을 내보내는 ‘맞춤형 오더’로 기선을 제압하는 승리를 가져왔다. 랭킹에서도 지명에서도 모두 박 9단이 우위였지만, 바둑에는 상대 전적과 ‘상성’이 존재한다. 조 9단은 이날 대국 전까지 박 9단에 상대 전적 6승1패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천적’이었고, 준PO 1차전 승부에서도 천적 관계는 지속됐다.
운명의 준PO 2차전, 2-2 상황에서 한 감독은 마지막 5국에 팀의 3지명 박영훈 9단 대신 5지명 조한승 9단 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뚝심 오더로 합천을 3-2로 제압했다. 이번에도 최종국이 된 5국은 조한승-박하민 대결이었고, 다시 한번 조한승 9단이 승리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렸다. 이날 대국을 바둑TV에서 생중계한 유창혁 해설위원은 “전략의 승리”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해원 감독이 이끄는 영암은 24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을 치른다. 상대는 정규시즌 2위 원익이다. 이날 오후 2시 발표된 오더를 살펴보면, 원익은 주장 박정환 9단을 선봉으로 내세웠고, 영암은 2지명 설현준 9단으로 맞섰다.
두 기사 상대 전적은 박정환 9단이 8승5패로 앞선다. 하지만 가장 최근 대국이었던 올해 1월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5라운드 대결에선 설현준 9단이 280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흑으로 반집을 남긴 바 있다. 한 감독은 “두 기사의 이번 시즌 바둑리그 경기는 서로 명국이었다”면서 “1국에 박정환 9단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고, 설현준 9단이 충분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오더를 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주요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영암은 이번 시즌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대만 용병’ 쉬하오훙 9단과 ‘안성준 공식’의 주인공 주장 안성준 9단, 1국에 등판하는 설현준 9단과 팀의 허리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박영훈·조한승 9단, 심재익 7단 등이 있다. 이에 맞서는 원익은 박정환·이지현이라는 리그 최강 수준의 ‘투톱’에 중국 용병 진위청, 이원영·김은지 9단 등이 출격을 기다린다. 양팀의 최근 대결이었던 정규시즌 12라운드 4경기에선 영암이 5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5국 불패’ 공식을 이어가면서 3-2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한편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팀은 5월3일부터 5일까지 정규리그 1위 영림프라임창호와 챔피언 결정전을 펼친다. 챔피언 결정전은 3판 2선승제로 진행하며, 2승을 먼저 거두는 팀이 2024-2025시즌 챔피언에 등극한다.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과 동일한 1분 10초(피셔 방식) 초속기로 진행하며 각 대국은 순차적으로 열린다. 우승팀에는 2억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준우승 상금은 1억원, 3위 6000만원, 4위 3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