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보다 알바 먼저…취업 준비 전부터 일하는 ‘취준준생’ [쿠키청년기자단]

자격증보다 알바 먼저…취업 준비 전부터 일하는 ‘취준준생’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5-05-06 15:30:04
취업 준비 비용 부담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는 ‘취준준생’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스물여섯, 대학에 막 입학한 시절만 해도 이 나이가 되면 진작 취업하고 남았으리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취직은커녕, 취직 준비에 전념하기도 힘들었다. 잔뜩 오른 생활비에 자격증 공부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명주(26·여)씨는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취준준생’이 됐다. 

완벽한 일자리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중국어 교육 분야에 취업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중국 기업에 취업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인 HSK(중국어 능력시험) 5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 대부분은 더 높은 수준의 HSK 6급 자격증을 요구했다. 취업의 문턱에 가로막힌 고씨는 결국 다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에만 몰두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주 4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서른 시간이었다.

취업 준비가 장기화하면서, 고씨와 같이 취업 준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취업 준비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뜻의 취준준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지난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청년들이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로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미취업자의 주된 활동은 직업교육·취업 시험 준비가 37.8%(48만 7000명)로 가장 많았다. 

졸업 후 HSK 6급 자격증 준비와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고명주씨.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부쩍 오른 물가에…허덕이는 취준생들


최근에는 물가 상승에 따라 생활비를 비롯한 취업 준비 비용이 늘어나면서, 취업 준비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청년들의 부담도 배로 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캐치’가 지난해 취업을 1년 이상 준비한 구직자 1473명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 비용을 조사한 결과, 52%가 지난해보다 취업 준비 비용이 늘었다고 답했다. 월평균 취업 준비 비용은 10~30만원이 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만원 미만(27%) ▲30~50만원(25%) ▲50~100만원(10%) ▲100만원 이상(4%) 순이었다.

취업 준비와 함께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수빈(25·여)씨는 체력의 한계를 토로했다. 임씨는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게 취준생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물가상승률을 생각했을 때 적은 시급으로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에 쓸 에너지와 시간을 아르바이트와 나눠 써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송나래(25·여·가명)씨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취업 관련 일정을 조율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호소했다. 송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면접이나 취직 관련 주요 일정이 생기면 근무 일정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며 “여러 기업에서 최종 단계까지 가는 데 면접을 대여섯 차례 보기에 부담이 컸다”고 전했다.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독서실 관리 업무를 맡게 된 허수정씨.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생활비 필요”…모은 돈 떨어지면 다시 아르바이트 시작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나서도,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다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3월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유한밀(34·남)씨는 현재 장기 아르바이트를 고민 중이다. 유씨는 “6~7개월 안에 취업할 줄 알고 취업 준비에만 전념했는데, 소득 없이 준비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은 단기 아르바이트 위주로 해왔는데, 취업이 계속 미뤄지면 장기 아르바이트를 고려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9급 사회복지 지방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허수정(24·여)씨 또한 비용 마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허씨는 “지금까지 공무원 준비에 들어간 비용이 400만원 정도 된다. 이번 6월에 공무원 시험이 있는데, 올해 4월이면 국가에서 주는 월세 지원도 끝나서 만약 떨어진다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원인은 고용 구조…해결 위해서는 정책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취준준생 문제를 오늘날 사회의 고용 구조 문제로 해석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다수의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자 스펙을 쌓기 위한 준비 기간도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청년 정책을 연구하는 정세정 부연구위원은 “기업에서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청년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을 별도로 준비하며 취준준생이라는 용어도 등장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정은 청년광장 사무처장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부터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한국 사회 내 빈부격차가 커지며 취업 준비를 지원해 주지 못하는 가정이 많아졌다는 점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었다.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당사자들의 단체 ‘청년광장’의 이정은 사무처장은 “취업 준비 과정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도 연결된 것 같다”고 했다.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이 처장은 서울시 청년 수당, 경기도 면접 지원 수당 등 지자체의 취업 준비 청년 지원 사업들을 정부가 통합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지원 정책을 입법화하는 게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과정 등에서 창출한 일자리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국가적 일자리 보장 제도를 시행하고, 초기업별 단체 교섭을 통해 산업별 노동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방안 등이 있다. 

정 위원 또한 “전반적으로 일자리 공급의 확대와 함께 고졸 청년과 대졸 청년 각각에 맞는 정책을 세심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취업에 의지를 보이는 만큼) 국가와 기업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공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decagram@naver.com
이가을 쿠키청년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