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해외 가격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제약·바이오업계에 대한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해당 정책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목소리와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의약품 가격 인하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약값을 평준화할 것이며, 유럽이 지불하는 수준과 맞추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정명령의 행심은 ‘최혜국(MFN) 약가 모델’ 도입이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향후 30일간 제약사들과 약가 협상을 벌인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유럽 등 다른 국가의 약가 수준에 맞춰 미국 내 약가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칙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등 중간 유통 구조를 제거하고, 환자가 제약사로부터 최혜국 가격으로 직접 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일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오히려 이번 약가 인하 조치가 미국 시장 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등 중간 유통 구조 개선과 고가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다.
셀트리온 측은 “이번 행정명령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조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특히 셀트리온같이 미국 현지에서 바이오시밀러를 직판 중인 기업에게는 또 다른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휴온스도 “약가인하 대상 약물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약가 격차가 크고 많은 지출을 일으키는 고가 의약품의 가격 인하가 주 대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휴온스의 주력 제품인 국소마취재의 미국 수출 관련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날 주요 제약·바이오 종목들은 일제히 상승마감했다. 이번 정책 변화가 가격 경쟁력을 갖춘 K바이오 기업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SK바이오팜은 전 거래일 대비 3500원(3.95%) 오른 9만2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셀트리온은 전장 대비 2500(1.65%) 상승한 15만4300원에 장을 마쳤다. 알테오젠(3.57%) 한미약품(2.78%) 리가켐바이오(2.78%) 유한양행(2.67%) SK바이오사이언스(1.14%) 삼성바이오로직스(0.915) 등도 상승마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바이오시밀러 가격이 오리지널 약가를 참조해 책정되는 만큼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고, 경쟁 심화에 따른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 사용은 4월15일 행정명령과 함께 더욱 촉진될 전망”이라며 “다만 Q(수요)의 증가로 P(가격) 인하가 가속화되면서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경쟁 심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희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MFN 약가 인하 정책이 실행될 경우 글로벌 제약사들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기업별 제품 포트폴리오와 미국 매출 의존도에 따라 영향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비용 절감 차원에서 CDMO(위탁생산) 활용 확대나 신약 기술이전 선호 등 전략 변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CDMO 기업과 신약개발사에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위탁 생산 단가 압박과 고가 혁신 신약에 대한 보수적 가치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 시장에 의약품을 보유한 국내 제약사들도 MFN 정책의 구체적 시행 방식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FDA 승인 절차 간소화로 개발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약가 인하 압력 및 경쟁 심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므로 향후 시장 반응과 정책 세부 내용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