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세제 법안이 22일(현지시간) 미 하원을 통과한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가 우려했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45X) 폐지 시점이 1년 앞당겨지는 것으로 유지되며 사실상 ‘생존’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글로벌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지원군 역할을 해온 보조금이 일단 유지되면서 업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본회의에서 감세 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 찬성 215표 대 반대 214표로 가결 처리해 상원으로 넘겼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번 감세 법안은 한국 기업들의 대미 경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각종 세액공제 축소 및 폐지 조항이 총망라돼 있다. 이중 한국 배터리 업계가 가장 주목한 것은 AMPC 조항이다.
일각에서 AMPC 조항이 완전히 폐지되거나 폐지 시점이 2028년으로 대폭 당겨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업계에서 우려가 나왔다. 최근까지도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2028년 조기 폐지 방안에 합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하원을 통과한 법안에서는 배터리 셀과 모듈에 대한 생산 보조금 액수는 현행과 동일하게 유지됐고, 종료 시점도 종전 2032년 말에서 2031년 말로 1년 단축되는 데 그쳤다.
현행법에서도 생산 보조금은 2030년부터 일몰이 적용돼 2032년에는 25%만 지급되기로 설계됐기 때문에 실제로 업계가 받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즉시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던 제3자 판매방식 조건 또한 2년간 유지돼 2027년까지 혜택이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하원 통과로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의 미국 진출 장벽은 더욱 높아져 K-배터리의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
이번 법안에는 배터리 제조사에 세금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AMPC 부분에 중국 등을 타깃으로 한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이 적용됐다.
과거 지분구조만으로 판단하던 FEOC 기준이 아닌 정부의 지배 수준에 따른 금지외국단체(PFE) 정의를 신설했고, 중국 정부의 통제 수준이 강한 지정외국단체(SFE)의 경우 법 개정 이듬해부터, 상대적으로 통제 수준이 약한 외국영향단체(FIE)는 2년 유예기간 적용 후 직접적인 보조금 수급을 금지하고 있다.
또 FEOC로부터 부품과 광물, 설계 등을 직접 공급받는 경우, 배당금과 이자·로열티·보증금 등의 자금을 일정 비율 이상 FEOC에 지급하는 경우, FEOC와의 라이선스 가치가 100만달러를 초과하는 경우도 보조금 수혜 대상에 제외하는 등 중국 업체의 보조금 수령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미국 진출을 추진해 왔으나 그 장벽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배터리 셀과 모듈 산업의 공급망 탈중국 기조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에도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핵심 소재(분리막·양극재·음극재·전해액) 중 분리막과 음극재 기업의 수혜가 예상된다.
양극재는 기존에도 한국산 양극재를 사용했고 전해액은 이미 미국 현지 조달 체계를 구축한 반면, 분리막은 중국 업체를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의 소수 업체만 생산하는 품목이다. 음극재도 중국 중심의 가치사슬(밸류체인)을 탈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도 마찬가지다. 기존 ESS 배터리는 중국산 의존도가 높았으나, ESS 역시 AMPC 수령을 위해서는 탈중국 소재가 필요한 만큼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의 시장 확대 기회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