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0.59%, 0.82%, 0.77%. 지난달 2일 시작한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 1~4화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가구)이다. 방영 후 한 달 내내 시청률 1%를 넘기지 못했다. 반전은 따로 있다. 화제성이 뜨겁다. 제작진에 따르면 방송 3주 만인 지난달 21일까지 ‘보이즈 플래닛’ 관련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1억5000만건을 넘겼다.
지난달 15일 막을 올린 JTBC ‘피크타임’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지도 낮은 보이그룹들이 경연해 재데뷔 기회를 따내는 이 프로그램의 지난 1일 시청률은 0.8%. ‘피크타임’ 제작진의 전작 JTBC ‘싱어게인2’(최고 시청률 8.66%)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온라인 언급량은 남부럽지 않다. 콘텐츠 경쟁력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피크타임’은 방송 첫 주 TV·OTT 통합 비드라마·쇼 부문 콘텐츠에서 가장 높은 화제성을 나타냈다.
Mnet ‘프로듀스X101’ 투표 조작 사건으로 침체기를 맞았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룹 엔하이픈을 탄생시킨 Mnet ‘아이랜드’를 시작으로, Mnet ‘걸스플래닛999 : 소녀대전’, MBC ‘방과 후 설렘’ 등이 잇달아 제작됐다. 올해는 ‘보이즈 플래닛’과 ‘피크타임’에 이어 MBC ‘소년판타지 – 방과 후 설렘 시즌2’과 Mnet ‘아이랜드2’가 시청자를 만난다.
이 프로그램들은 ① 국내 시청률은 낮지만 ② 온라인 화제성은 높고 ③ 데뷔 그룹이 빠르게 팬덤을 형성한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아이랜드’는 시청률이 한때 0.4%까지 내려갔지만, 엔하이픈은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걸스플래닛999 : 소녀대전’도 0%대 저조한 시청률과 달리, 이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그룹 케플러는 데뷔 음반을 일주일 만에 20만장 넘게 팔아치웠다. ‘방과 후 설렘’도 비슷하다. 방영 내내 1%대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그룹 클라씨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 중이다.
비밀은 해외 K팝 팬덤에 있다. ‘아이랜드’는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투표를 도입해 177개국에서 참여를 끌어냈다.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 데뷔조 투표에도 175개국 K팝 팬들이 동참했다. ‘방과 후 설렘’은 유튜브와 틱톡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타고 해외에서 입소문이 났다. 관련 동영상 조회수만 10억뷰가 넘는다.
이런 흐름은 ‘보이즈 플래닛’과 ‘피크타임’에서도 나타난다. 글로벌 OTT 플랫폼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보이즈 플래닛’은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칠레, 쿠웨이트 등 21개국에서 인기 순위 1위를 꿰찼다. ‘피크타임’은 방영 첫 주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호주 등 14개국 톱10에 안착했다. ‘보이즈 플래닛’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 시청자 투표수는 한국 투표수를 크게 앞지른다. 관계자는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시청자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일본 투표수가 가장 많다”고 귀띔했다. ‘피크타임’ 측도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 나우에서 해외 투표를 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업계에선 “시청률만으로는 흥행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1%대 안팎의 저조한 시청률에도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다. 한 가요관계자는 “데뷔 전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대중에 노출된 팀은 인지도부터 다르다. 해외 팬덤이 큰 보이그룹은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물갔다고는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콘텐츠”라고 귀띔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아이돌 오디션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글로벌 OTT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해외 인기가 높은 K팝 지식재산(IP)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다. Mnet을 보유한 CJ ENM은 케플러 등 자사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을 산하 레이블 소속으로 둔다. ‘피크타임’ 우승팀은 JTBC의 지원을 받아 전국투어 콘서트를 연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참가자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월드투어 등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며 “방송사들도 아이돌 오디션을 통해 K팝 IP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