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은 1998년 외환위기 때 노사정 대타협과 달리 정부가 아닌 노사 당사자가 주도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취약계층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 20일 만에 만들어낸 합의를 일선 노동현장에서 따를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 방안도 재정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은 반쪽 합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사민정 합의에 의의=근로자는 임금 인상을, 사업자는 인원감축을 양보해 공동으로 노력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시민단체와 종교계·학계·사회원로 등이 민간 부문에 참여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사업자, 실업자 등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해 "사회안전망을 적극 확충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민간주도로 노사가 머리를 맞대 합의문을 이끌어낸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과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은 합의문 도출 뒤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합의문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자 측이 합의 내용처럼 고용유지에 힘을 쓰기보다 정리해고가 주는 경비 절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의 벽은 높다. 자칫하면 근로자만 임금 삭감을 감내하다가 해고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의 역할은 캠페인 수준이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효력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일자리 나누기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등 캠페인 전개에 적극 나서겠다는 게 합의문에 명시돼 있지만 당장 효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어떻게'가 빠진 정부 지원=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실천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을 추진하고, 중소기업에는 임금 절감액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우고용유지지원금 지원 수준 상향 조정, 실업급여 지급 확대, 휴업 근로자 지원 방안 마련, 일자리 나누기 참여 기업에 정책자금 지원 등도 제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방안을 마련할지는 제시되지 않았다. 지원을 하려면 재정 확보가 우선돼야 하는데 추경예산이 얼마나 확보될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내놓은 지원 방침은 "강구할 것" "적극 노력할 것"과 같은 문구에 갇혀 있다.
노사민정 합의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31조9000억원을 확보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 지원 규모를 미리 제시할 수는 없다"며 "예산이 합의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얼마나 확보되는지에 따라 정부 지원의 효력도 갈리게 된다.
◇진정한 사회적 합의 이뤘나=이번 합의가 효과를 내려면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사민정 비대위에는 민주노총이 포함돼 있지 않다. 민간 부문의 참여가 있었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위협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청년실업자 등의 직접적인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사민정 구성에 대표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산별노조 장악력이 있는 민주노총은 합의문에서 도출된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노총은 합의문이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 삭감이라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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