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한도가 23년 만에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으로 자금이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저축은행으로서는 딱히 달갑지 않은 모양새다. 예금보험공사에 내야 할 예금보험요율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야는 예금자보호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에 합의했다. 예금자보호법을 포함한 6개 민생 법안을 처리하는 데 우선 의견을 모았다.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원까지 보호해주는 제도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정치권과 금융권에서 꾸준히 언급된 오래된 논쟁 중 하나다. 5000만원의 한도가 지난 2001년부터 그대로 유지되면서 국민 소득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올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국회를 통과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SVB)이 파산하고, 같은해 7월 한국 새마을금고 위기설에 따른 뱅크런까지 발생하자 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논의는 가속화됐다.
금융권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금융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으로 예금을 옮기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예금보호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릴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현재보다 16~25%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금융당국과 예금보호공사에서는 ‘머니무브(급격한 자금이동)’를 경계하고 있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저희 연구용역 결과 머니무브를 가장 우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용역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며 “경제 규모와 금융자산 증가를 감안하면 예금보호한도를 상향하는 기조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인상 여부나 시기 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저축은행 업권에서는 환영보다 우려의 시선이 앞서고 있다. 당장 저축은행 업권은 부동산PF사태로 인한 리스크 증가로 대손충당금을 크게 적립하면서 실적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 와중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크게 쏠릴 경우 늘어나게 될 예보료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예보료는 예금보험제도 운영을 위해 예보가 금융회사로부터 걷는 기금으로 예금자보호제도의 자금 원천이다. 특히 예금자보호법상 저축은행은 예금 잔액 대비 0.4%를 예보료로 납입해야 한다. 문제는 저축은행의 예금보험료율은 타 업권에 비해 유독 높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2012년 저축은행사태 이후 올라간 것으로 은행 예보료율(0.08%)과 비교하면 5배 높다.
이미 저축은행 업권의 예보료율은 점차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79개 저축은행이 예금보험공사에 지급한 예보료는 총 555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4% 늘었다. 처음으로 연간 예보료 5000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대 1억원까지 예금이 보호된다고 하면, 저축은행의 공신력이 올라갈 것”이라면서도 “그간 금융당국에 예보료율 인하를 지속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는데, 보호 한도까지 상향되면 예보료 증가 부담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은 건전성 관리로 여·수신 영업을 적극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때문에 머니무브가 일어날지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