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재활용센터 무료상품 ‘활활’

불황에 재활용센터 무료상품 ‘활활’

기사승인 2009-02-26 17:44:03

[쿠키 사회] “어머, 그 사이 누가 가져갔네….”

26일 서울 고덕동 재활용센터 ‘리사이클 시티’ 1층 사무실. 주부 박모(40)씨가 자신이 ‘찜’해둔 가습기를 누군가 가져간 걸 보고 몹시 아쉬워했다. 가습기는 이날 오전 센터로 입고된 무료상품이었다.

박씨는 색이 바래 낡긴했지만 작동에 이상이 없어 중고품을 사는 대신 그냥 들고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잠깐 가구를 둘러보고 와보니 가습기가 이미 ‘입양’됐던 것이다. 가습기는 전북 문경에서 올라온 주부 윤모(43)씨에게 돌아갔다. 윤씨는 “서울 친척집에 왔다가 센터에 들렀는데 공짜라는 말에 냉큼 가지고 나왔다”고 좋아했다.

경기불황으로 재활용센터에서 무료상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서울 각 구청이 위탁운영 중인 재활용센터는 알뜰 주부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쓸만한 가전제품이나 가구, 생활용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중고품보다 무료상품이 주부들에게 인기다. 예전 같으면 중고품에 밀려 폐기처분되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입고되는 즉시 나간다. 박씨 사례처럼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리사이클 시티 김진홍 개발팀장은 “고장이 없어도 연식이 7년 이상씩 오래 됐거나 흠집이 많아 도저히 팔 수 없는 물건을 무료상품으로 내놓고 있다”면서 “10년 된 전기밥솥, 색이 벗겨진 전자레인지도 ‘좋다’며 가져가는 분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재활용센터도 경기침체에 허덕이긴 마찬가지다. 불황에 중고품을 사는 사람이 많을거라 예상하기 쉽지만 아예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여기에 이사하는 경우도 뚝 끊겨 센터에 입고되는 상품이 급격히 줄었다.

상품 질이 떨어지면서 손님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무료상품만 잘 나갈 뿐 실속이 없다. 서울 시내에 25개 매장을 운영 중인 리사이클 시티도 매출이 전년 대비 10% 가량 줄어들었다.

다른 자치구 재활용센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목동 재활용센터 박모 대표는 “지난 하반기 매출이 전년의 70% 수준에 머물렀다”며 “각 자치구 재활용센터마다 중고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중고가게에 와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무료상품을 가져가는 주민들을 보면서 불황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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