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경기도 분당에 사는 박영준(36·가명)씨는 지난달 동 주민센터를 찾아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다. 전업주부인 아내와 어린 아들 등 세 식구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1개월치 생계비로 108만원을 받았다.
30대 젊은 나이에 정부 지원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박씨는 지난해까지 어엿한 냉면집 사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장사가 힘들어지자 12월31일 냉면집 3곳을 모두 접었다.
박씨는 은행빚 1억6000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60만원짜리 월세집에 살고 있지만 최근엔 월세도 내지 못해 주거마저 불안하다. 박씨는 조리사 자격증을 갖아 있어 직장을 구하면 월 3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몇달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달에 25만원 버는 아르바이트가 생업의 전부다. 아내는 세 살배기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구직을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은 원칙적으로 1개월만 받을 수 있다. 이달 말까지 박씨나 아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이 가정의 위기는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오게 된다.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김영훈(54·가명)씨 가족은 최근 긴급복지지원으로 생계비 132만원을 받고 한숨을 돌렸다. 고깃집을 운영하던 김씨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4월 가게를 접고 수선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6개월도 지나지 않아 10억원의 빚만 떠안고 폐업했다. 갑작스런 어려움에 김씨는 일할 의욕조차 잃었다.
지난해 10월부터 김씨 부인(53)이 파출부나 식당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요즘엔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일손을 놓고 있다. 대학교 2학년 아들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원가량이 네 가족에게 주어지는 돈의 전부다. 결국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고 한 달치 생계비를 받았다.
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박씨나 김씨처럼 근로능력이 충분한 30∼50대가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며 "중산층 가정이 이렇게 쉽게 빈곤층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긴급복지지원은 최대 4개월 밖에 받지 못해 이후 이들은 기초수급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청와대는 '신빈곤층' 용어 사용을 안 하기로 했지만 신빈곤층은 지금도 계속 양산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수급자는 155만명, 차상위계층이 286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신빈곤층이 합류하면 그 수는 훨씬 늘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이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하던 서민과 중산 계층이 빈곤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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