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전산망에 부장판사 글… 부실 조사 땐 집단행동 가능성
6일 법원 내부전산망에는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부터 하라"는 한 부장판사의 글이 올라왔다. 대법원이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책임자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글이다.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말하는 판사들도 사법권 독립을 위한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등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대법원은 촛불 재판 배당 의혹이 불거진 뒤 실시했던 진상 조사가 '부실 조사'로 판명나면서 이미 상처를 입었다. 이번 조사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 나오면 판사들의 집단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서울 서부지방법원 정영진 부장판사는 이날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총 책임자로서 이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가장 우선 할 일은 일선 법관들이 판사회의를 통해 사법권 독립 수호 의지를 천명하고 신뢰 회복 대책을 숙의하는 것"이라며 "법원행정처는 진상 조사 주체로 나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장 판사들은 "명백한 재판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이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장의 의견도 나와 같다'면서 재판 진행을 촉구한 것은 재판권을 침해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위헌 제청이나 관련 재판 진행 여부는 재판부의 고유 권한인데 수뇌부가 미리 결론에 대해 짐작하고 의견을 강요한 것 아니냐"며 "진상 조사 결과가 미흡할 경우 젊은 판사들의 항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판사들은 근무지별 또는 기수별로 삼삼오오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시각과 향후 대응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행정 담당자로서 당연히 할말을 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후임자에게 부담스러운 사건을 남기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건 일반론에 불과하다"며 "이 내용을 실제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석의 문제를 떠나 이번 사태를 사법부 쇄신의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 판사는 "과도한 사법 행정 시스템과 기준의 부재가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이라며 "사법 행정이 재판에 개입하는 문제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맡는 경우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법부의 중립성을 지켜낼 시스템 고안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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