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독촉 이메일’ 사태의 근저에는 사법부의 관료화가 있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대법원장부터 지방법원 배석판사에 이르는 수직형 서열구조를 취하고 있는 데다 상급 법관에게 후배 법관의 인사권을 부여함으로써 ‘상명하복’의 구조를 고착화시켰다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사법관료화 왜 생기나
최근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린 설민수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이번 사건의 근원에는 관료적 법원이 있다”며 “법관 역시 관료제 조직의 일부로 승진을 거치는 인사 과정 속에서 재판부의 독립은 신화적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장의 제왕화를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대법원장은 전국 2500여명 판사의 인사권, 헌법재판소 재판관 3분의 1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분의 1의 지명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법원장들은 대법원장의 눈치를, 후배 법관들은 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승진, 전보, 연수 등 인사에서 주요 판단자료로 쓰이는 근무평정제도 관료화를 공고히 하는 요소로 꼽힌다. 근무평정은 법원장 등 사법행정 감독권을 가진 고위 법관들이 매년 한 차례씩 소속 판사들의 성실성, 균형감각, 책임감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제도다.
이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이 절대적이던 법관 인사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평가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면서 오히려 상급 법관의 말에 더욱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선책은 없나
학자들은 사법부의 관료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인사제도가 현재의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법관 간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대대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재 승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고등법원 부장 제도를 없애고 고등법원 자체를 비슷한 경력의 판사들로 구성, 부장은 순환보직으로 맡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관의 독립이나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서 침해 행위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현직 판사 중 처음으로 ‘신영철 대법관의 용퇴를 주장한 김형연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는 법관독립위원회 또는 재판독립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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