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자활사업 10년은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로 요약된다. 빈곤층 자립을 목표로 시작된 사업이지만 자활에 참여한 기초생활수급자 100명 중 93명은 여전히 극빈층에 머물러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일을 해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가 자활 의지를 되레 꺾고 있다.
◇"희망은 어디에…"=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원단 장사를 하던 '사장님' 이윤옥(가명·50·여)씨는 지난해 8월부터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씨는 사업이 망한 2005년부터 2년 넘도록 스스로 살아보려 애썼지만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마지막으로 지역자활센터를 찾았다.
이씨는 자활과 함께 생계비를 지급받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다. 지역자활센터 반찬사업단에서 일하며 자활 월급 70만원을 받고 생계비 3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돈으로 대학생 자녀 2명과 함께 겨우 먹고 산다. 학자금 대출은 벌써 1000만원이 넘어섰다. 일을 하면 나아질 줄 알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빚만 쌓여갔다. 이씨는 "어느 시점이 돼야 형편이 나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자활을 하는데도 빈곤 탈출의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자활 참여자 고모(45)씨는 "일 한 대가로 받는 돈이 한달에 70만원도 안된다"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만족할 뿐이지 이 정도 월급으로 수급자에서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 자활이라도 하면서 일할 의욕을 되찾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차상위 계층인 나모(39·여)씨는 2006년부터 자활을 원했지만 줄곧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다 2년 만인 지난해 겨우 참여하고 있다.
◇꺾이는 자활의지=자활만으로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턱없이 적은 급여로는 자립 여건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자활로 받는 일당은 2005년과 비교해 2000∼3000원 늘었을 뿐이다. 일을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35만∼70만원에 불과하다. 자활에 참여하는 일부 차상위 계층 사정은 더 심각하다.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더 적은 돈으로 살아야 한다.
자활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행 제도와 지원이 수급자 탈출의 유인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빈곤 탈출 이후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구태여 홀로서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힘겹게 취업을 해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더라도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면 취업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산이 한정돼 자립을 지원해주는 기관도, 자활 일자리도 태부족이다. 자활이라도 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수용할 수 있는 인력은 한계가 있다. 중랑유린지역자활센터 임향빈 실장은 "자활은 복지 중에서도 재생산이 일어나는 유일한 분야인데 예산이나 인력부족의 문제로 근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활사업 투자·일자리 늘려야=전문가들은 정부가 자활사업 투자를 늘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예산 부족을 해결한 뒤 다양한 근로능력 향상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야 빈곤층 탈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취업에 성공했을 때 기초생활수급자로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취업 성공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떨어지기 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생계비 단순 지원에서 벗어나 일할 수 있는 빈곤층이 극빈층으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방향으로 자활사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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