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로 돌아온 유시민 “정치하고싶다는 마음 강하지 않아요”

저자로 돌아온 유시민 “정치하고싶다는 마음 강하지 않아요”

기사승인 2009-03-22 21:10:01


[쿠키 문화] 유시민(49)씨는 요즘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한 출판사로 출근한다. 출판사에서 내준 방에서 혼자 노트북을 놓고 책을 쓴다. 작년 5월 총선에서 낙선했고, 7월부터 죽 그렇게 지내왔다. 지난 19일 그가 일하는 방을 찾아갔다. 유씨는 드립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내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여기 나오면 어떤 날은 하루에 한두 마디만 할 때도 있어요. 혼자 밥 먹는 날도 많구요. 앞으로는 동네 조기축구회에도 나가려고 해요.”

‘노(盧)의 남자’로 불렸던 사람, 국회의원을 두 번 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사람의 일상으로는 좀 허허로운 느낌이었다.

“장관을 하다 물러나면 보통 로펌이나 기업에서 고문으로 모셔가죠.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데려가기도 하고. 기업 강연만 해도 먹고 산다고 해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어디서도 안 불러요. 누가 부르겠어요? 소신껏 소리 지르고 살았고, 지금은 외로워졌어요. 그러니까 공평한 거죠, 뭐.”

유씨는 책을 쓰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 5000원짜리 된장찌게를 사먹는다. 쉴 때는 지인들과 낚시도 다닌다. 어디서나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공직을 맡으면 나가서 일을 하는 거고, 공직을 못 맡으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면서 “한 시기의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이 종료되었고, 그 다음은 또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활동을 하다 나온 사람들은 다시 자기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마당발이 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없죠. 그래서 어디 자리 하나 맡으려고 애쓰고 다시 의원이 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의원 몇 년 해보면 사실 너무 편한데 익숙해져요. 운전도 혼자 하기 어려워지니까요. 저도 지금 생활에 적응하는데 몇 달 걸렸어요.”



최근 유씨는 정치 은퇴 후 첫 책을 냈다.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라는 제목의 정치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량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 이전에 인기 저술가였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경제학카페’ 등 10권의 책을 썼고, 모두 합해서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신간 ‘후불제 민주주의’는 헌법을 주제로 한 대중교양서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과 유씨의 정치경험에 대한 회고가 두 축을 이룬다.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6년간 제가 겪었던 것, 느꼈던 것을 한 번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예전에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밝히고, 또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알리고 싶은 게 있어요. 다른 한 편으로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쓰는 거죠. 글 쓰는 것 말고는 생계수단이 없어요. 강의도 좋은데 시간강사료 갖고는 네식구 살기가 어려워요.”

저자 유씨는 “현대는 권력자의 시대가 아니라 대중의 시대이다”와 같은 대담한 통찰과 “요즘에는 기억을 불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파일을 클릭하면 자꾸만 모래시계가 뜨고 버퍼링 시간이 길어진다”와 같은 트렌디한 표현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안다. 또 대통령, 장관, 의원 등 권력자들의 세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유씨는 ‘지식소매상 유시민’이라고 쓰인 새 명함을 만들었다. 연내에 책이 또 한 권 나오고, 그외애도 여러 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정치는 이제 완전히 그만 두는 것일까?

“정치를 하고 싶다는 자기의 마음과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요구, 이 두 가지가 있어야 공직을 맡는 거예요. 죽어도 정치 안 해, 이건 아니예요. 나서야 될 때가 되면 또 나서야 되겠죠. 그렇지만 전 정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리 강하지 않아요. 국민들도 저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것 같구요. 국민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지금은 그런 거죠.”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유시민 씨와의 인터뷰 전문

-여기는 언제부터 나오셨어요?

작년 7월부터 나왔죠. 경북대에서 강의하는 날을 빼곤 거의 나옵니다. 어떤 때는 밤 늦게까지 쓰죠. 사실 제가 어디 갈 데가 없었어요. 집에서는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매달려서 일을 하기가 쉽지 않고. 여기 한철희 사장이 빈 방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제가 쓰기로 했죠. 직원들이 회의할 때는 잠시 비워주기도 하고. 고양시 집에서 차 몰고 오면 여기까지 20분 걸려요."

-정치인들은 은퇴하면 대부분 개인사무실을 내던데?

개인 사무실 얻을 돈이 없어요. 제가 벌어놓은 돈이 없어요. 서른둘부터 마흔까지 독일에서 공부했고, 그 뒤로는 돌아와서 시사평론도 쓰고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도 했지만 저축할 여력은 없었죠. 아마 지금 빚만 좀 있을 걸요."

-사람들이 요즘 뭐라고 부릅니까?

다들 '전 장관'이라고 부르죠. 한국 사회에서는 죽을 때까지 최고위직으로 부르니까. 한 번 장관하면 죽을 때까지 장관이죠. 젊은 나이에 '전(前)' 자가 붙어서 곤혹스러워요. 팬클럽에서는 제 닉(닉네임)이 '첫맘'이라서 '첫맘님'으로 불러주고, 학교에서는 '교수님'으로 불러줘요. 사실 그것도 어색해요. 그냥 선생님하면 되지, 무슨 교수님이예요. 여기 있는 출판사 직원들은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제일 편하죠."

-명함을 보니까 '지식소매상'이라고 쓰셨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예전 같으면 '자유기고가'라고 했을텐데, 어디서 '지식소매상'이란 말을 보고 그거 괜찮겠다 싶어서 써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니까 소매상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돌베개 출판사와의 인연은?

여기서 제 책이 여러 권 나왔어요. '경제학카페'도 여기서 나왔을 거예요. 여기 한 사장님이 제가 어려울 때 늘 도움을 주셨어요. 1998년 마흔에 한국 들어왔을 때도 꽤 많은 돈을 빌려주셨죠, 선인세 명분으로. 예전부터 같이 낚시도 다니고 그랬어요, 부부 동반으로."

-지금까지 책을 꽤 여러 권 내셨죠?

어디보자. (손가락으로 혼자 꼽아보더니) 이번이 10번째 책이네요. 공저까지 포함하면 11권."

-책 쓰는 일은 어떠세요?

사는 건 편안해요. 자유롭고. 정치는 소모가 많은 일인데 책은 쓰면 쓸수록 내면이 풍요로워지니까 좋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되고."

-방에서 혼자 일 하는 게 갑갑하진 않으세요?

"갑갑하지 않아요. 원래 혼자 일 하는 거 좋아하니까요.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일이 있고 그럴때는 함께 일을 하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혼자 있는 게 훨씬 좋아요. 여기 나오면 어떤 날은 하루에 한두 마디만 할 때도 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할 때, 그리고 계산하고 나오면서 고맙다고 인사드릴 때. 혼자 밥 먹는 날도 많아요. 물론 여기 직원들과도 종종 같이 먹죠."

-여의도에서 파주로 출근지를 바꾼 셈인데, 느낌이 어떠세요?

여의도는 전쟁터죠. 매일매일 전쟁을 하러 나가는 곳이고. 여기는 놀이터예요.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하죠. 그만큼 차이가 커요."

-시간이 날 때는 뭐 하세요?

예전부터 동네 조기회에서 축구를 계속 했었어요. 지난해에 다리가 다쳐서 쉬고 있는데, 이번에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낚시도 좋아해요. 혼자 가거나 친구들하고 가거나 그러죠. 예전에는 정태인씨하고 자주 다녔는데 요즘 그 사람이 바빠서 한동안 못 갔네요. 같이 가자고 해봐야 겠어요."

-이번에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을 이번에 내셨는데,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는 건가요?

그럼요. 책 출간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죠. 사람들이 잘 알자는 거예요.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가지고 싶지만 못 갖는 것을 다시 갖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건가 등을 얘기하는 거죠. 앞으로는 정치와 별로 관계 없는 것도 쓸 거예요. 한 장 한 장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걸 써야죠, 올해 안에. 글을 쓰는 건 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예요."

-권력에서 물러난 소감을 얘기한다면?

공직을 맡으면 나가서 일을 하는 거고 공직을 못 맡으면 한 사람의 시민,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돌아와 사는 거죠. 목표는 똑같아요. 가슴 뿌듯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거죠. 20대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내용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20대 때는 자유와 인권, 뭐 이런 걸 위해서 살았고, 정치에 들어와서는 기회균등, 문화적 다양성, 과거사 청산 등을 위해 노력했죠.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5, 6년간 내가 겪었던 것, 느꼈던 것, 그런 걸 한 번 정리는 해야죠.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해석하고 싶은 게 있고 그러니까. 다른 한 편으로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쓰는 거예요. 글 쓰는 것 말고 생계수단이 없어요. 강의도 좋은데 시간강사료 갖고 네 식구 살기 어려워요."

-전 정권을 책임진 한 사람으로서 아직은 반성하고 자숙할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이명박 정부 비판을 많이 하셨는데, 비판보다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시민의 발언권이 복권됐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비정치적인 책을 쓰고 있어요. 사실 지금 쓰는 책을 먼저 낼 걸 그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후불제 민주주의'도 원래는 좀더 교양적으로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도 매일매일 뉴스를 보는데 도저히 그렇게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번 고쳐썼어요. 발언권을 말씀하셨는데,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저에게는 지금 계약에 의해 맺어진 책임(공직)이 없어요. 책임이 있으면 부담이 크고 일 중심으로 가게 되죠. 저는 이전과 똑같은 사람이고 가치관도 비슷하지만 제일 큰 차이는 지금 제게는 책임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는 말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못 받아도 괜찮은 거예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사람들이 너무 호오가 강한 것 같아요. 세상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예요. 제 방식이 유일하게 옳은, 혹은 좋은 방법이라고 저도 보지는 않아요. 그냥 저의 방식인 거죠. 누구든 자기 스타일로 하는 것 아니예요?"

-하다못해 쇼가 될 지언정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좀더 오래 보여주면 어땠을까요?

책을 보면 반성에 대한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제가 반성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건 잘못했구나 싶은 일이 생각나면 또 쓰겠죠."

-지난 정권이 반성해야 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양극화 문제는 집권 당시 생각을 못했던 문제라서 너무 늦게 대응을 했어요. 부동산 문제도 너무 대응이 늦었고 완급을 조절하는데 실패했다고 봐요. 일자리나 청년실업 문제는 욕을 먹으면서도 노력을 했지만 해결하지 못 했어요. 누가 했어도 어려운, 구조적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역량이 부족했다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그 이상 뭘 자꾸 반성하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선에서 대패했으니까 물론 잘못이 있었겠죠. 구체적인 실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상 뭘 더 반성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책을 읽었는데, 현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 전 정부에 대한 반성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어요. 전직 대통령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건데, '민주주의2.0'을 열었을 때 나온 사설들을 보면 기가 막혀요. 다들 침묵하라고는 것 아녜요? 노 대통령은 자연인으로서 홈피에 글을 쓰는 거예요. 그걸 왜 하면 안 됩니까? 듣고 싶은 사람은 듣고, 말고 싶은 사람은 말면 되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힘은 논리의 힘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발언하는 것입니다. 제가 발언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저를 비판할 수 있어요. 이건 아주 정상적인 겁니다."

-정치에 참여해본 소감을 정리한다면?

6년 정도 정치를 했어요. 어디 공익근무하러 갔다 온 느낌입니다. 정치인으로 있는 이상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어쨌든 난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요. 나쁜 동기를 가지고 뭘 한 적은 없어요.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또 한 편에는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게 더 많을 지 모르겠지만."

-의원이나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흔히 뒷자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왜 그런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총선을 치르면서도 떨어지면 무슨 책을 쓸까 생각했어요. 보통 장관에서 은퇴하면 로펌이나 기업에서 고문을 해요. 대학에 초빙교수로 가기도 하고. 기업체 강연을 해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은 안 불러요. 소신껏 소리 지르고 살았고, 지금은 외로워졌죠. 그러니까 공평한 거 아녜요? 노후는 좀 걱정이 돼요. 앞으로 한 10년, 15년 더 일을 할텐데, 그동안 은퇴 후를 대비한 자산 형성을 좀 해놓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벌어야죠. 남한테 폐 안끼칠 정도는 돼야 되니까."

-노무현 정부를 평가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수립된 정부가 아닙니다. 평지돌출형인 거죠. 두 번 있기는 힘든 사건이라고 봐요. 소셜 베이스가 있어서 나온 정권이 아니니까요. 저는 노무현 정부까지도 6월항쟁의 산물이었다고 봅니다. DJ 5년으로 끝내기에는 그 동력이 남았었고, 사람들이 아쉬워했던 것이죠. 거기에 노무현의 개성과 흡인력으로 이긴 겁니다.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킬만한 안정적 사회적 기반은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정당, 지역, 계급, 계층 등 어떤 기반도 튼튼하지 않았어요. 언더 미들 클라스의 고학력 30∼40대가 주요 지지층이었어요."

-정치는 다시 안 할 건가요?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자기 마음과 정치를 하라고 하는 국민의 요구, 이 두 가지가 있어야 공직을 맡는 겁니다. 그 두 가지가 절충이 돼서 정치를 합니다. 저는 '죽어도 정치는 안 해' 이건 아니예요. 2002년도에 너무 열받아서 정치를 시작했어요. 민주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하는 걸 보면서 너무 화가 난 거죠. 그렇게 시작해서 국회의원 5년, 장관 1년반을 한 겁니다. 만약 앞으로도 저라도 나서서 뭘 해야 된다면 참여하겠죠. 그러나 그건 일반론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국민들이 원하질 않잖아요? 권력에 미친 놈이라면 그런 걸 따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국민의 마음을 살펴야 되?아요? 국민들은 저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국민도 아니고 나도 권력에 큰 욕심이 없고, 그런 거죠."

-지식인과 정치인, 둘 중 자신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중 하나만 해야 하나요? 지식인으로 있다가 정치인 하다가, 또 끝나면 다시 지식인 하면 왜 안 되죠? 저는 정치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썼어요. '아침편지'라고 홈페이지에 썼죠. 당의장 선거 출마하면서는 거의 논문 분량의 글을 써서 돌렸어요. 대선 후보 출마할 때는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책 한 권을 냈구요. 저는 정치할 때도 지식인이었어요. 그렇지만 정치하는 동안은 아무도 지식인으로 안 봐주죠. 정상적인 사회라면 왔다갔다 하는 거라고 봐요.

-유력 정치인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 전 장관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정치활동을 하고 나온 분들은 생산활동을 다시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당발이 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없어요. 저도 이 생활에 적응하는데 몇 달 걸렸어요. 대부분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자리를 얻으려고 하고, 다시 의원을 하려고 하죠. 의원 몇 년 해보면 너무 편한데 적응돼요. 모든 일을 비서들이 해주니까요. 그만 두고 나니까 운전도 혼자 하기 어려워지더라구요. 제가 20년을 운전했는데도 그래요. 저는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데까지 복귀했어요. 앞으로 만화방에도 가보고 싶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 시기의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이 종료된 거고, 그러면 그 다음은 또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고."

-만화를 좋아하시나요?

예, 예전부터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면서 쉬곤 했어요."

-일본 만화도 보시나요?

그럼요. 많이 봤어요."

-혹시 '신의 물방울'도 보셨나요?

봤어요. 그런데 뭐 그렇게 유난스럽게 와인을 즐기나 싶었어요. 몇 가지 와인을 알고 즐기면 되지 않나요?"

-인디밴드인 '장기하와얼굴들'을 좋아한다고 책에 쓰셨던데, 어떻게 그 팀을 아시나요? 40대 이상에서 이 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애 엄마가 지난해 말 쯤에 동영상을 보내줬어요. 보고 뒤집어졌죠. 김창완의 노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비슷한 느낌이더군요. 그 뒤로 EBS '스페이스'에서 나오는 공연도 봤어요. 특히 '아무 것도 없잖어'란 노래가 좋더라구요."

-저한테 드립 커피(볶아서 간 커피 콩을 거름 장치에 담고, 그 위에 물을 조금씩 부어서 만드는 커피)를 만들어 주셨는데, 커피를 많이 드시나요?

좋은 것만 먹고 살수 있나요? 커피는 많이 마시는 편이예요. 예전에 커피박물관이란 곳에 갔다가 드립 커피 만드는 걸 봤는데, 그 뒤로 저도 만들어 먹죠. 좋더라구요."

-정치인이 쓴 책이라면 진지한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경우가 드물어요. 내용도 진부하고, 진짜 그 사람이 썼는지 진실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많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유 전 장관은 정치인이면서 저자로서도 인정받는 예외적인 경우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공직에 있다가 유배를 가면 책을 썼어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바로 그런 분 아닙니까? 이게 사대부의 문화적 풍토였던 거죠. 정치도 인문적 교양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하고 그걸 갖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행정을 하고 정책을 한 사람이 책을 써야 하고, 그걸 지식사회에서 평가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야말로 대단한 작가입니다. 도정일 교수는 최근 오바마의 힘을 이야기의 힘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오바마의 책을 읽어보셨나요?

' 담대한 희망'을 읽었습니다. 저하고는 다른 스타일이죠. 저는 좀 데카당한 편인데, 오바마는 진지한 사람이예요."

-오바마의 힘을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오바마는 진지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바마를 무엇이 만들었나요? 민주당 네트워크의 힘입니다. 기존의 풀뿌리 민주주의 네트워크가 오바마를 수용한 겁니다. 부시 8년의 악몽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그 네트워크가 새로운 인물을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정치에서는 오바마 같은 인물이 안 나옵니다. 오바마는 워싱턴 가는 길도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그와 비슷하죠. 그런데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네트워크는 일시적으로 결집된 것이고,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민주당의 네트워크는 제도적인 것이죠. 그래서 한국 정치에서는 오바마가 나올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바마 같은 인물이 발견된다고 해도 정당 상층부에서 인정받지 못 해요. 여기서는 풀뿌리의 힘으로 올라온 정치인을 위험하게 봅니다."

-지난 총선 얘기도 좀 해보죠.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한 것은 2002년 대선 공연에 대한 커튼콜 같은 것이었어요. 5년이 흐르면서 공연의 환호는 사라지고 관객은 떠나고 야유가 난무했죠. 그래도 다시 다듬어서 그런 멋진 공연을 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어요. 누군가는 그 무대에 나와서 커튼을 열고 "감사합니다" 이 말을 했어야 했어요. 그게 저의 대구 총선 출마였던 것 같습니다. 2002년 공연은 다시는 열릴 수 없는 공연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누군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되니까. 대구 총선은 이상주의적인 선거전이었어요. 무모한 선거였고, 열정적인 선거였으니까. 2002년 대선 이후 그런 선거는 처음이었을 겁니다. 선거 결과는 66 대 33. 딱 한나라당의 절반을 얻었어요. 왜 셋 중 하나는 나를 찍었을까? 감동적인 공연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사람들 속에 있는 거예요. 이상을 품고 신명을 지펴서 열정을 뿜어내는 이벤트 같은 선거. 그러나 그런 선거는 앞으로 한동안 기대하기 어려워졌어요. 대구에서 낙선하고 도망나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예요. 지금 국회에 있으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제가 미처 묻지 못한 것들이 있을텐데, 꼭 하고 싶던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요.

제가 앞에서 여의도는 전쟁터고 여기는 놀이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전쟁터와 놀이터의 사이가 그리 먼 것도 아니예요. 정치를 비하하고 정치인을 불신하는 게 지성인 것처럼 얘기하는 컬럼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정치 그 자체를 야유하고 저주하는 걸 보면 너무 심해요. 자해에 가깝죠. 정치에도 똑같은 사람이 있고, 어떤 게 생기고 어떤 게 없어지는 것이라면 거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남들은 다 잘 하는데 정치만 못 해서 나라가 이 모양인 건 아니죠. 그럼 언론은 제 역할을 했나요? 국민은요? 지식인들이 자기의 지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정치를 야유하는 풍토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진실을 가지고 사는 거죠." 글·사진=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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