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36·노건평씨 맏사위)씨에게 지난해 2월 5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50억원)를 건네는 과정에서 연결고리를 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정씨가 50억원의 성격 및 사용처 규명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주목받는 이유는 박 회장과 연결된 두 차례의 50억원 거래 및 시도 과정에 공교롭게도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다. 연씨측은 노 전 대통령 퇴임을 2개월여 앞둔 2007년 12월 박 회장에게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거액을 직접 요구하기 어려운 탓인지 친분이 있던 박 회장에게 먼저 연락을 해 줄 것을 정씨에게 부탁했다. 연씨측 대리인은 2일 "박 회장에게 투자해 줄 것을 직접 요청한 사람은 연씨"라며 "다만 연씨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2개월 뒤인 지난해 2월 자신의 홍콩법인 APC 계좌에서 연씨의 홍콩 계좌로 500만달러를 보냈다.
정씨는 또 2007년 8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함께 박 회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대통령 퇴임 후 대통령 재단을 만들 때 쓸 비용으로 홍콩 계좌에서 50억원을 보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씨와 강 회장은 실명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50억원 송금 및 전달 제안에는 모두 정씨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같은 규모의 돈(50억원)과 같은 사람(박연차·정상문), 역시 같은 출처(홍콩 APC 계좌)가 노 전 대통령 퇴임에 즈음한 6개월 간격을 두고 두 차례 등장하는 점이 석연치 않다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검찰은 2007년 8월의 50억원과 2008년 2월의 50억원이 사실상 같은 명목의 돈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 건너간 50억원이 투자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전달됐다는 연씨 해명 역시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50억원과 관련해 정씨가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제로 연씨의 투자금 명목으로 50억원을 요구했는지는 검찰의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친구 사이인 정 전 비서관은 2003년 1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청와대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검찰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APC 계좌 자료를 확보하면 50억원이 실제로 연씨가 홍콩에 개설한 계좌로 전달됐는지, 연씨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결국 정씨의 역할과 APC 자금 흐름이 50억원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단서일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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