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지부장이 ‘하루만 더 버텨달라’고 했지만…” 농성자가 전한 파업 77일

“노조지부장이 ‘하루만 더 버텨달라’고 했지만…” 농성자가 전한 파업 77일

기사승인 2009-08-07 18:00:02

[쿠키 경제] 아내 얼굴은 모처럼 활짝 펴 있었다. 지난달 28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만났던 농성자 아내 권모(36)씨는 7일 기자에게 76일만에 귀가한 남편 이모(36)씨를 소개했다. 통성명을 하니 남편 이름이 당시 권씨가 얘기한 것과 달랐다. 남편의 신변을 걱정해 가명을 말한 것이었다.

이씨는 노조가 외부 사무실로 사용하는 평택 시내 한 건물 지하로 안내했다.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그는 6일 저녁 9시20분쯤 경찰 버스에 실려 공장을 나왔다. 평택역 앞에 내려 동료들과 “주먹밥만 먹었는데 배에 기름칠 좀 하자”며 삼겹살을 먹고 귀가했다.

이씨는 “6일 오후 2시10분 한상균 노조지부장이 마지막 협상 결과를 보고할 때 논쟁이 있었다”고 했다. 도장2공장 4층에 모인 노조원 400여명 중 일부는 “이 정도로 합의하려 70여일을 투쟁했느냐.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다. 마실 물이 없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식수 주먹밥 컵라면 건빵 등 비상식량은 한달 정도 더 버틸 양이 비축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노조원 다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전날(5일) 밤 9시 전체 회의에서 한 지부장이 ‘내일 사측에 대화를 요청하겠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는(고용 유지) 힘들 것이다. 10%가 될지, 50%가 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는데도 조합원들이 결정을 위임했다”고 말했다.

동력이 떨어진 결정적 요인은 부상과 이탈이었다. 한 지부장은 경찰의 2차 진압작전이 끝난 뒤 “하루만 더 버텨달라”고 호소했지만 100명 이상 공장을 떠났다. 이씨의 팀 동료 2명도 짐을 챙기더니 팀원들 앞에 섰다. 한 사람은 “이 회사에 더 못다닐 것 같다. 이민가려 한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혼자 농사짓는 어머니께 가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씨는 “팀원들이 모두 ‘그동안 고생했다’며 배웅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쌍용차 사태를 ‘대리전’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노사 문제였다면 쉽게 끝났을텐데 정리해고 선례를 만들려는 정부와, 쌍용차가 무너지면 ‘정리해고 도미노’가 우려된다는 금속노조 사이에 끼어 복잡해졌다는 주장이다. 파산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여론 조성용 카드’라며 “어느 정부에서 20만명 생계가 달린 회사를 파산시키겠냐”고 되물었다.

지난달 20일 경찰이 공장에 투입된 뒤 그는 하루 중 12시간 ‘규찰’ 당번을 하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했다. 규찰은 위험 물질과 중요 설비를 지키는 업무였다. 농성자들은 도장2공장 1∼4층에 고루 분산돼 복도에서 잠을 잤다. 그는 “아무도 회사가 망하리란 생각을 안했기 때문에 설비 훼손자 엄중 처벌 지침이 엄격히 적용됐다”고 말했다. 회사 측 직원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친한 사람들과는 농성 중에도 수시로 통화하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7일 아침 그는 외가에 있는 딸(10)과 통화했다. 목소리를 듣자 울음을 터뜨린 딸은 왜 우냐는 물음에 “아빠가 나와 기뻐서 운다”고 했다. 평택= 국민일보 쿠키뉴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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