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백낙청(71·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1일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의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당연한 일”이라며 “중도세력의 광범위한 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신간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출간을 기념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보수로 분류되는 분 중에서도 합리적인 분들, 진보로 분류되는 분들 가운데에도 ‘내가 추구하는 진보가 진짜 진보인가’ 성찰하는 분이 있다”면서 “이들의 격차는 좁다. ‘양쪽의 연대가 가능한가’ 보다 ‘얼마나 폭넓게, 얼마나 짧은 기간에 진행될 수 있을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기도 한 백 교수는 진보 진영의 큰 어른으로 꼽힌다. 그는 3년 만에 내놓은 신간을 통해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연대해 총체적인 변혁의 길에 나서자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분단체제에서 당면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수구적인 반민주세력은 물론 공허한 급진노선이나 안이한 개혁노선도 배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극단적 보수와 급진적 진보는 남북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주요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극단적인
좌우 노선도 분단체제가 남북 주민에게 씌워놓은 멍에를 벗길 수 없으며 결국 원칙 있는 중도, 경륜과 일관된 실행력을 갖는 중도만이 남북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실천 방향임을 호소하고 있다.
백 교수는 그러나 “이 정권은 제대로 된 보수정권이 아니다.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전략이나 품격이 없다”면서 현 정권이 합리적 보수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합리적 보수도 아니고, 그 안에는 파시스트 성향이 있는 사람도 많다”라며 “하지만 제대로 파쇼를 할 수 있는 능력이나 프로그램도 없다. 그냥 국민을 엄청나게 짜증나고 피곤하게 하는 정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파쇼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도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백 교수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하다싶은 기자들 질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답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평소 신중한 언행과 이날 간담회에서의 표현 수위를 비교해 볼 때, 작심하고 나선 듯 했다. 그는 한나라당을 겨냥해 “보수정당이 어느 날 멋지게 탈바꿈 해 국민 30%의 지지를 받는 합리적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여권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정리가 필요하다. 만나보면 많은 분들이 이 정권은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합리적 보수가 세력으로서는 없다.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긴 어렵고, 중도세력의 큰 틀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현실 정치는 대개 중도 마케팅을 펴는데 이는 선거에서 이기려고 내 쪽 고정표는 잡고, 저쪽 골수표는 포기하고, 중간을 잡자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은 그냥 그때그때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본다. 중도 마케팅에 가까운데, 일관된 마케팅 전략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진짜 중도 마케팅 열심히 하는 정치인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합법적으로 당선된 정부이고 힘으로 밀어낼 수도 없다”면서 “남은 임기가 되도록 무난하게 가도록 뭔가 우리 시민사회가 나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대통령이 됐으니 도와주는 게 도리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런 얘기는 비판하지 말고 돕자는 건데, 그게 효과가 없으면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도 도와주는 방법”이라며 “우리 사회 곳곳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계속 퍼지고 있고, 따로 활동하던 사람들도 횡적으로 자주 만나 공동대응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에 대해 그는 “이른바 제3차 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남한발이라고 본다”면서 “ 그간 여러 위기가 있었고 북한이나 미국의 책임도 있었지만 2007년 10·4 선언 등으로 많이 수습이 돼 남북관계 발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남북관계 안정이 국정의 우선 과제인데 (현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도 탓하지 말라’고 한 건 시시비비를 가릴 것도 다 덮어주고 국민총화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라며 “그가 평생 지향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전제로 하면서 거기에 좌절해 세상을 버리게 될 때 지나치게 남 탓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남 탓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는 왜 자꾸 정부 탓하느냐는 말은 국정 권한을 쥔 정부가 할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병세가 심상치 않은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도 많이 걱정된다”면서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이어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가 다 사라지게 돼 그것만으로도 큰 공백이다. 북측에 대한 영향력에 특별한 위상을 가진 분이어서 중요한 자산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국제적 차원에서도 손실이 굉장히 클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니까 어디 가서 대접 받고 (해외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그러지만 현직 대통령이 아니면 별로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내 유일하게 해외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서 위상이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백 교수의 이번 신간은 분단체제 및 한국사회 분석작업으로 펴낸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흔들리는 분단체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잇는 네 번째 사회평론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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