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4년 낸 저서 ‘나의 길 나의 사상’ 중 한 대목이다. 한길사의 ‘오늘의 사상신서’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발간됐던 이 책에는 계간지 ‘철학과 현실’ 93년 겨울호에 실렸던 김광수 한신대 철학과 교수와의 대담이 전재돼 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김 교수의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소설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독서관을 밝힌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때 탐독했다고 해 화제가 됐던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언급하는 부분도 있어 눈길을 끈다.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인 동시에 폭 넓은 사상가이기도 했다. ‘나의 길 나의 사상’에는 당시 강만길 고려대 사학과 교수,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스칼라피노 교수, 정운영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등과의 대담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김 전 대통령은 가히 방대하다고 할 만한 인문·사회과학적 통찰과 전망을 전개한다.
그의 다양한 지적 편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저서로는 ‘옥중서신’이 있다.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29통을 엮은 책으로, 84년 청사 출판사에서 발행된 초판은 나오자마자 금서가 됐다. 가족들에게 쓴 편지에 “다음 책을 차입해 주세요”라며 적은 도서 목록은 철학, 경제학, 역사, 신학, 문학, 논리학 등을 넓고 깊게 포괄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뒤 그의 저서가 온·오프라인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고인의 사상을 직접 접하고 가늠해 본다면 우리 사회 일각에 아직도 남아있는 ‘상고 출신’ 또는 ‘빨갱이’ 등의 거친 인식이 이제라도 교정될 수 있을까. ‘나의 길 나의 사상’에 나오는 대담 중 한 대목을 다시 읽으며 그가 죽기 직전까지 시달렸던 굴레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용공이 아니십니까?”
“….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는군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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