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을 말하다] 보호치료시설 ‘여름 캠프 현장’을 가다

[교육,희망을 말하다] 보호치료시설 ‘여름 캠프 현장’을 가다

기사승인 2009-08-25 21:22:00

[쿠키 사회] “그동안 너무 내 마음대로 산 것 같아요. 학교를 관둔 게 너무 후회되네요. 여기서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저녁 찾아간 충남 태안군 사목해수욕장에서는 60명의 청소년들이 캠프의 마지막 밤을 맞이해 캠프파이어와 조별 장기자랑을 하고 있었다. 난타 공연, 여장 패션쇼, 합창 등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장기자랑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와하하” “멋지다”라는 말이 울러퍼졌다.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다른 또래의 캠프보다 오히려 더 천진난만하고 활기찬 표정이었다. 이 아이들이 죄를 짓고 법원에서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대림1동의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아이들 60명은 이곳에서 지난 18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들은 절도 방화 등의 죄로 서울·인천·수원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거나, 집안이 어려운 불량 청소년들로 지역 아동상담소의 소개를 통해 보호 위탁된 아이들이다.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자 연극이 시작됐다. 정수(가명)라는 아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정수의 독백이 시작되자 객석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다른 아이들이랑 싸웠다. 그때 내가 힘이 세다는 걸 알았다. 불량학생들에게 인정받아 함께 어울렸다…술 담배를 하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열아홉 살 내가 있는 것은 문득 소년원이었다…항상 불안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좌절 금지” “좌절금지”라고 외치는 격려가 터져 나왔다. 이어 선생님 복장을 한 두 아이가 등장했다. “우리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춤 잘추는 꿈이나 뭐든지. 뚱뚱한 거만 빼고 말이야 하하.”

정수와 선생님 복장을 한 아이는 함께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에 고무장갑을 낀 채 익살스런 춤을 췄다. 아이들은 폭죽을 이용해 나무 장작에 불을 붙였다.

캠프파이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이들은 ‘트리플에스조’ ‘발라조’ ‘슈퍼보이스조’ ‘싼티안나조’ ‘야옹조’ ‘쌍광조’ 등 6개로 조를 나눠 장기자랑을 시작했다. 트리플에스조는 깡통과 간장통 생수통 등을 이용해 난타 공연을 펼쳤다. 슈퍼보이스조는 색종이 가면을 쓰고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 ‘어쩌다’에 맞춰 화려한 율동을 선보였다. 야옹조는 텔레토비 꽁트를 들고 나왔다. 코믹차력쇼(쌍광조)를 펼치는가 하면 여장, 농부차림 등으로 쿠믹 패션쇼(싼티안나조)를 연출하기도 했다. 발라조는 합창회를 열었다.

이어 아이들은 근로청소년회관 선생님들과 함께 가수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새’에 맞춰 촛불 공연을 펼쳤다. 공연 도중 바람이 세게 불어 촛불이 일부 꺼졌지만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괜찮아요. 고마워요”를 연호했다. 끝으로 선생님들이 찍은 아이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쳐졌다.

3박4일간 아이들은 각종 게임과 놀이에 흠뻑 빠졌다. 전날에는 스티로폼과 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바다 한 바퀴를 돌아오는 게임을 했다. 조별로 25㎞ 걷기대회를 하면서 인근 지역의 초등학교 학생 숫자 물어오기, 떡방앗간 전화번호 알아오기 게임도 함께했다. 이런 게임을 통해 아이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 의식에 조금씩 눈을 떴다.

지난 4월 근로청소년회관에 입소한 병훈(가명·17)이는 “한 명이라도 잘못되면 배가 뒤집히는 뗏목놀이가 가장 힘들었고, 보람이 있었다”면서 “지난해 10월에 그저 살려고 남의 돈을 훔친 게 너무 후회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내년 초에 퇴소하면 그동안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양어머니한테 돌아가겠다”면서 “내가 공부는 못해도 활동적이고 몸쓰는 데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장래 꿈은 스턴트맨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입소한 정준(가명·17)이는 “여기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막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고개를 떨궜다. 주위 사람을 무시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불을 지르고, 자전거를 훔친 과거를 털어놓았다. 학교는 그저 다니기 싫어 그만뒀다고 했다.

정준이는 “가장 후회되는 것은 학교를 그만둔 것”이라며 “비록 머리는 나쁘지만 공부해서 전문대에 들어가 꼭 오토바이 판매센터를 차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하지만 학교를 자퇴해 다시 전에 다니던 학교를 못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대입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교사는 “이번 캠프를 통해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래서 뿌듯했다”면서 “한때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걸어갈 자격이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안=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모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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