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채권 추심…몸살 앓는 법원

넘쳐나는 채권 추심…몸살 앓는 법원

기사승인 2009-08-26 17:34:02
[쿠키 사회]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의 한 중액재판부 법정. 이날 재판이 예정된 사건은 모두 100여건. 은행과 카드회사,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기관이 채무자에게 대출금을 갚으라며 소송을 낸 사건이 대부분이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역시 금융기관 직원이거나 대리인인 변호사들이다.

법정이 열린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50여건의 재판이 끝났다. 재판장이 사건번호를 부르면 원고측 대리인이 대답하고 성명을 확인한 뒤 피고 이름을 불렀다. 피고가 출석하지 않으면 선고를 내리거나 다음 기일을 지정해 통보했다. 이렇게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여초에 불과했다.

소송금액 1억원 이하 사건을 담당하는 소액 및 중액사건 법정이 금융권의 채권 추심장으로 변하고 있다. 사인간 거래보다 금융기관이 개인에게 빚 독촉을 하는 공개된 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송금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 재판부는 이런 사건이 밀려들다 보니 일반 사건과 금융 사건을 나눠 심리하기 위해 판사 16명이 각각 2개의 재판부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소액사건 25만6163건 가운데 85.4%(21만9010건)이 금융사건이었다. 2000만원 초과∼1억원 이하 사건을 다루는 중액 재판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소·중액 재판부에 금융 사건이 몰리는 이유는 공증비용보다 소송비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개인과 대출계약을 맺을 때 계약 자체에 압류·경매 등 채권 집행이 가능하도록 공증을 해놓으면 소송 없이도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30만∼35만원의 공증비용이 든다. 금융기관으로선 이보다 훨씬 싼 소송비용(송달료 5만∼6만원+소송금액의 0.45∼0.5%인 인지대)만 내면 되기 때문에 소송을 거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법원 판결을 받아놓으면 10년간 채권 행사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도 금융기관의 소송 러시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한정된 사법서비스 자원이 너무 한 곳에만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앞으로 민간 배드뱅크가 출범하면 소·중액 재판부에 금융 사건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서민들이 전 재산을 걸고 다투는 일반 사건이 소홀히 다뤄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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