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박영태 법정관리인 “파업 끝나고 정부·은행에 뛰어다녔죠”

쌍용차 박영태 법정관리인 “파업 끝나고 정부·은행에 뛰어다녔죠”

기사승인 2009-09-08 16:41:01
[쿠키 경제] 쌍용자동차 박영태(48) 법정관리인은 비장했다. 현재 상황이 매우 어렵고 중대하는 의미다. 8일 평택공장 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77일간의 ‘옥쇄 파업’으로 쌍용 노사 모두 소중하고도 고통스런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경험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묘한 질문에는 에둘러 갔다.

박 관리인은 자금 문제를 꺼내자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 얘기도 꺼냈다.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노조 집행부가 이달 말 새로 구성되면 ‘향후 5년간 노사 무분규 선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회생 자금을 마련하고 투자를 유치하려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업이 끝나고 한달 간 정부 은행 등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쌍용차가 달라졌으니 도와주십시요’라며 부탁하러 다닌 거죠. 그런데 믿지를 않아요. 신차 개발비도 안주고, 세금 유예도 안되고…. 먼저 바뀐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더군요. 말로만 떠드는 노사 선진화를 몸으로 보여주고 다시 얘기할 겁니다.”

쌍용차는 현재 개발 중인 준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C200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정대로 내년 상반기 출시하려면 올 겨울에 혹한기 테스트를 마쳐야 한다. 자금을 마련치 못해 올 겨울을 넘기면 내년 겨울까지 1년을 기다리게 된다. 달라진 노사 모습으로 정부와 채권단을 설득해 계획대로 신차를 출시하고 투자자들이 탐낼 매물로 변신시키겠다는 뜻이다.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도 회사 ‘작품’ 아니냐고 묻자 펄쩍 뛰었다.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부당노동 행위가 될 수 있어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1988년부터 20여년간 근무한 ‘쌍용맨’이다. 재무회계팀장, 재경담당 상무보, 재무담당 상무 등을 거쳤다. 법원은 이유일 법정관리인에게 영업과 해외마케팅을, 박 관리인에게는 구조조정과 채무상환을 주된 임무로 맡겼다. 노사 업무 경력은 거의 없지만 파업을 거치는 동안 나름대로 철학이 생겼다. “협상의 양은 줄이고, 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노사 협상의 핵심은 결국 임금과 복지인데 곁가지로 생기는 다툼이 너무 많더란 얘기다.

쌍용차는 요즘 ‘파업 백서’를 만들고 있다. 파업 원인과 충돌 상황, 협상 결렬과 타결 과정은 물론 각각의 뒷얘기까지 수백쪽 원고에 기록하고 있다. 후배들이 이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게 ‘역사’로 남기는 것이다. 박 관리인은 “모든 걸 솔직하게 적으라”고 지시했다. 한상균 노조 지부장과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규정상 공개할 수 없는 상하이차 관련 서류를 보여줬다는 내용도 담긴다.

그는 파업 기간 여러 국회의원과 ‘막말’을 해가며 싸웠다고 한다. 중재역을 자처한 의원들에게 “여기서 원칙을 양보하면 회사가 망한다”고 설득하다 번번이 고성이 오갔다. 면박 당한 의원이 분을 삭이지 못해 “두고 보자”며 돌아간 적도 있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그의 휴대전화와 집 전화로는 하루 200통씩 협박전화가 걸려 왔다. 새벽 2시 걸려온 전화에 욕설을 섞어 맞고함 치던 그에게 대학생 딸은 “아빠,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세요”라고 했다. 요즘도 간혹 협박성 전화가 걸려 온다.

“해외 자동차 업체 중 유력한 인수 희망자가 있다면서요”라고 물었더니 박 관리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10월에 회생계획안이 승인된다면 곧바로 수면 위에 떠오를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인수 기업에 요구할 세 가지 조건을 밝혔다. 최소 10년은 충분히 투자할 여력이 있어야 하고, 연구개발 기지를 한국에 둘 기업이어야 하며, 한국 상황에 탄력적으로 맞춰 갈 인수자라면 환영한다는 것이다.

쌍용차는 적지만 ‘고정팬’이 있다. 생산이 재개되자 보름 만에 팔려나간 2012대 구매자는 쌍용차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파업 종료에 맞춰 제작한 광고 카피 ‘쌍용차는 더 이상 흔들릴 자격이 없습니다’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박 관리인은 이 광고를 이번 주로 끝내라고 지시했다. 새 광고에는 더 많은 소비자를 겨냥한 카피가 담긴다. 그는 “아픈 역사를 겪은 직원과 기다려 준 고객을 위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평택=국민일보 쿠키뉴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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