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모든 것을 알려주마

비틀즈의 모든 것을 알려주마

기사승인 2009-09-11 14:25:00

[쿠키 문화] The Complete Beatles Chronicle/마크 루이슨/생각의 나무

참 대단한 밴드고, 대단한 작가에, 대단한 출판사다. 39년 전에 해산한 영국 록 밴드를 다룬 책이 무려 468쪽이다. 그것도 한 손으로는 들기도 어려운 가로·세로 237×280㎝의 육중한 대형양장. 서울대 영문과 출신 권영교씨를 비롯해 전문 번역가 6명이 매달려 완역본을 완성해냈다.

사진자료 500여장이 포함된 이 올 컬러판 저작의 가격은 6만9000원. 불황에 이렇게 비싼 록 밴드 책이 얼마나 팔릴까도 싶지만, 숱한 마니아를 포함해 비틀즈 팬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출판사는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긴 9일부터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된 비틀즈의 디지털 리마스터 음반 전집이 세트당 30만원이 넘는 초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출판사의 판단은 시의적절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음반 세트와 이 책을 함께 갖추고 싶어 할 팬들에게는 금전적 압박이 몹시도 곤혹스럽겠지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완전한 연대기’다.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최고의 음반, 최고의 작곡가, 최다 판매 등 여러 가지로 독보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비틀즈가 1957년 그 전신인 스쿨밴드 ‘쿼리멘’으로 출발해 70년 공식 해체할 때까지의 행적을 연도별·날짜별로 낱낱이 적었다. 저자 마크 루이슨은 음반사 EMI의 정식 요청에 따라 EMI가 소장한 비틀즈의 모든 자료를 장장 7년에 걸쳐 분석했다. 수많은 녹음작업과 무대 공연, 방송 출연, 영화 촬영, 무명시절부터 전성기까지의 각종 계약서와 포스터, 언론 인터뷰까지 비틀즈와 관련된 기록이라면 모조리 모아 정리했다. 아울러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물론 음반제작 기술자, 공연 기술자, 연주자, 녹음기사 등 관련된 사람들을 방대하게 만나 인터뷰하고 이 책을 집필했다. 그래서 이 책은 ‘천재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단한 역작!’(선데이 텔레그래프) ‘비틀즈에 관해 이보다 더 자세하고 종합적인 책은 없다!’(더 타임스)는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한국판에는 원작에도 없던 고급 컬러 화보들을 다수 수록했다. 거기에 각계 인사들의 비틀즈에 대한 추억을 곁들였다. “비틀즈에 의해 내 청춘은 트로트와 군가의 정서로부터 진화할 수 있었다.”(소설가 김훈) “영원히 우리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그리운 이름.”(화가 황주리) “비틀즈는 아직까지도 세계를 감수성으로 엄호하고 있는 특수부대다”(시인 김경주) “딸아이는 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태어났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미국식 이름도 필요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늦은 밤, 혼자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데 라디오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가웠다. 미셸. 너무나 사랑스런 이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딸아이의 이름은 미셸이 되었다.”(김주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나중에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나왔을 때 비틀즈 마니아를 자부했던 내가 그 곡을 못 들어봤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어렵사리 그 곡을 구해 들었던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국회의원 강용석)

이 책에 대한 출판사 보도자료 첫머리에는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We’re more popular than Jesus now)”는 존 레논의 66년 언론 인터뷰 발언이 제목으로 인용돼 있다. 사실 이 오만한 발언은 비틀즈 추락의 한 계기로 작용한 것이었다. 몇 년 뒤 아트 펑크 록의 정점 패티 스미스가 대표작 ‘글로리아’ 에서 “예수는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 죽었지만 내 죄를 대신해 죽은 건 아냐(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라고 노래했다가 논란을 일으키는 등 영·미 대중음악계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비틀즈 건이 일으킨 파문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발언이 전 세계 기독교인을 분노케 하면서 비틀즈의 미국 순회공연에 반대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비틀즈 앨범의 화형식이 집행되는 등 파장이 커지자 존 레논은 “기독교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사과하고 콘서트 활동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록 밴드로서 스스로 시한부인생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후 스튜디오 작업에 집중해 후기 걸작인 ‘화이트 앨범’ ‘애비 로드’를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밴드의 수명은 소실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교황청은 기관지인 ‘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이례적으로 “(존 레논의 과거 발언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세대로 자라며 급작스런 성공에 취한 영국 노동계급 청년의 ‘과시’처럼 이해된다”고 밝히며 42년 만에 사과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비틀즈는 현재에도 살아남아 대중 음악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번 리마스터 전작 세트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핫트랙스 음반매장에는 개장 전부터 팬들이 장사진을 쳤다. 비틀즈 붐이 재연될 조짐도 보인다. 원곡이 식상하다고 생각해 ‘A day in the life’는 제프 벡 버전으로, ‘You never give me your money’는 사라 본 버전으로, ‘Because’는 엘리엇 스미스 버전으로 즐기던 애호가들도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오리지널 버전을 음미할 만하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김호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