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하루에 따게 해준다고?

운전면허 하루에 따게 해준다고?

기사승인 2009-12-01 13:21:01


[쿠키 사회] ‘운전면허 하루에 딸 수 있다.’ ‘운전면허 따기 쉬워진다.’ ‘운전면허 하루면 취득!’

정부가 지난달 17일 국무회의에서 운전면허 취득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및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하자 대부분 언론이 이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는 정부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 수준의 우리나라 교통문화 현실에서 면허 취득 절차의 주안점이 ‘쉽고 빠르게 따기’에 집중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접근일까. 면허취득 간소화를 향한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왜 문제인지 짚어본다.

◇면허 취득 훨씬 쉬워지면 교통 안전은?=법제처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사항” “국민불편법령 개폐 사업의 결실” “제2의 신분증으로 통용되는 운전면허증 취득이 쉬워질 전망” 등의 표현으로 오로지 편의 증대 측면만 부각시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면허 취득에 걸리는 최소 시간이 국가면허시험장의 경우 9일에서 하루, 전문학원의 경우 15일에서 10일로 단축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소요 비용도 현재보다 30만~8만원 정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법제처 업무보고에서 “미국처럼 간편하게 시험을 보고 합격할 수 있도록 수험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문제는 면허를 현재보다 훨씬 더 쉽고 빨리 딸 수 있게 됐을 때 당연히 우려되는 부분, 즉 교통사고나 교통정체 발생이 늘지 않겠느냐는 상식적인 예상에 대해 법제처는 물론 경찰도 사실상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면허 취득 절차가 대폭 축소돼도 응시자들의 운전기능이 떨어지거나 교통안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정부 측은 아무 설명도, 근거자료 제시도 하지 않고 있다. 본보가 취재한 전문가 대부분이 그 부분을 비판했다. 교통안전 문제를 도외시하고 응시자들의 절차상 편의만 도모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으로, 일종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지적이다.

◇학과시험만 합격하면 바로 연습면허…‘위험천만’=개정안은 국가면허시험장의 경우 기능교육(3시간)과 도로주행연습(현행 10시간)을 없앤다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응시자는 학과시험만 합격하면 곧바로 연습면허증을 받아 도로로 나설 수 있게 된다. 현재는 기능교육을 이수하고 기능시험까지 합격해야 연습면허를 받을 수 있다. 운전전문학원의 경우 도로주행연습이 크게 축소(15시간→10시간)되고, 기능교육 역시 축소(수동기어 20시간→15시간, 자동기어 15시간→12시간)된다.

허억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핸들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초보자가 안전장치도 없는 자동차로 도로에 나와 운전연습을 하면 교통사고와 교통정체는 당연히 증가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옆자리에 가족, 연인, 선배 등 면허를 가진 동승자가 타서 연습을 도와준다고 해도 숙련된 전문가가 아닌 바에야 위험 대처 능력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반 자동차는 급출발, 급제동, 급가속 등에 대비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보조 브레이크, 보조 클러치 페달 등이 전혀 장착돼 있지 않다.

◇기능교육과 주행연습은 폐지할 게 아니라 강화해야=임삼진 서울대 공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간소화 방안에 황당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면서 “선진국이 그 나라 국민들 불편하게 하려고 면허 취득을 어렵게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1차선 서행, 우측 추월, 교차로 꼬리물기 등 ‘기본이 안 된’ 운전문화 사례를 거론한 뒤 “이런 부분들이 면허 취득 과정에서 당연히 숙지돼야 하는데 숙지는커녕 아예 교육이 안 되고 있다. 실질적인 내용으로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올 3월까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었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정부안이 면허 취득의 군살을 제거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안전 대비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라며 “도로주행연습 폐지나 시간 축소는 다른 나라 사례와 맞지 않다. 운전전문학원의 경우 주행연습을 위한 필수시간이 15시간인데, 이것도 부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 내 기묘한 엇박자=개정안은 지난해 7월부터 추진해 온 정부의 또 다른 정책인 ‘교통사고 사상자 절반 줄이기’와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임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교통사고 반으로 줄이기”라며 “그 기조를 면허 간소화 방안이 자칫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이 주관하는 이 프로젝트는 2007년 기준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 3.1명을 2012년까지 1.3명으로 줄이는 것으로 교통안전공단이 최일선에서 수행하고 있다. 공단 측은 면허 간소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홍로 교통안전공단 이사는 “기능교육과 도로주행연습 폐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이사는 “안 그래도 벼락치기로 운전면허를 따는 나라에서 교육과정을 더욱 간소화하겠다는 건 국민편의를 이유로 국민생명을 위협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한국이 OECD 교통사고 다발국가가 된 가장 큰 이유가 면허를 쉽게 따도록 하는 제도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운전학원이 문제라고?=경찰을 중심으로 정부 측에서 기능교육 및 도로주행연습을 ‘국민 불편’으로만 치부하는 배경에는 운전학원의 교습 효율성에 대한 불신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인 권지관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논문을 보자. ‘운전학원 교육제도에 관한 연구-교육이수자의 교통사고율 비교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권 교수는 장문의 실증 자료를 제시한 뒤 제5장 결론에서 “전문학원에서 배출된 운전자들의 낮은 교통사고율은 1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교통사고 사망자를 연간 1만2653명(1996년)에서 6327명(2006년)으로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문학원 출신 신규 면허취득자에 비해 일반학원 등 비전문학원 출신(국가면허시험장 응시자) 신규 면허취득자의 평균 교통사고율이 1997년 1.5배에서 2006년 2.6배로 그 차이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전문학원 출신 면허 취득자가 상대적으로 사고를 덜 낸다는 말이다.

권 교수는 경찰종합학교 교장, 부산지방경찰청장 출신이다. 현재 경찰청 운전면허시험관리단장을 맡고 있다. 특별기획팀=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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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기자
hkkim@kmib.co.kr
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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