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이승철 “25년간 풀기 어려웠던 건 표절…영원한 숙제”

[쿠키人터뷰] 이승철 “25년간 풀기 어려웠던 건 표절…영원한 숙제”

기사승인 2010-05-10 06:00:00

"[쿠키 연예] 갈래머리 소녀들은 ‘희야’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고, 지나가는 낙엽에도 눈물을 흘리던 감수성 풍부한 아가씨들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사랑의 열병을 달랬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소녀시대’로 꼬마 팬까지 섭렵하면서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한 이승철(44). 22장의 앨범, 200여 곡으로 대중의 희로애락을 담당했던 그가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지난 주 서울 남산의 한 호텔에서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마주한 이승철은 지나간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으며,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로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리메이크는 새 생명을 얻는 작업…많이 불러줬으면

25주년 앨범은 이승철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음미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소녀시대’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등 역대 히트한 노래 7곡을 리메이크했으며, 타이틀곡 ‘너에게 물들어간다’를 비롯해 ‘25번째 프로포즈’ ‘그때로 돌아가자’까지 새 노래 3곡을 넣었다.

앨범 제작 기간은 3주 정도 걸렸다. 25주년이라는 ‘기념비적 앨범’이라는 측면에서 놓고 볼 때 3주는 다소 짧은 감이 있으나 “좋은 노래는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에서 보면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다. ‘오늘도 난’ ‘오직 너 뿐인 나를’ ‘소녀시대’ ‘듣고 있나요’ 등이 3일 내외에 탄생된 사실이 그의 철칙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리메이크 작업에는 국내 최고의 가수들이 참여했다.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god 출신 김태우는 ‘희야’로 목소리를 보탰다. 이승철의 노래 ‘소녀시대’를 리메이크해 스타덤에 오른 인기그룹 소녀시대는 ‘소녀시대’를 다시 리메이크하는 진풍경을 빚어냈다. 섹시 디바 아이비는 ‘긴 하루’를, ‘보고싶다’의 김범수는 ‘떠나지마’로 이승철의 25주년을 축하했다. 이승철은 후배들의 헌정 리메이크에 흡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곡 선정은 후배들이 직접 했고 자신들의 느낌에 따라 불렀어요. 그 중 (박)진영이에게만 특별히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죠. 진영이의 노래 ‘너의 뒤에서’를 좋아하는데 그 느낌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에서도 묻어나길 원했거든요. 전곡을 듣고 나니 세월에 따라 잊혀졌던 노래가 새 생명을 얻은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신곡에서는 색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타이틀곡인 ‘너에게 물들어간다’는 신인 뮤지션 최용찬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경쾌한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이다. 힘을 뺀 목소리는 25년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뮤직비디오에는 S.E.S 출신 가수 겸 배우 유진이 노 개런티로 뜻을 함께 했다. 수록곡 ‘25번째 프로포즈’는 타이거JK가 피처링해 눈길을 끈다.

“‘너에게 물들어간다’를 타이틀곡으로 정한 건 ‘이게 이승철 노래 맞나’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선택한 곡이에요. 제가 줄곧 부르던 발라드에서 벗어나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가사가 독특해서 고른 곡이죠. 25주년 콘서트에서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번 앨범에 내놓게 됐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소리쳐’ 표절 시비 때

식상함을 지양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지난 25년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물어봤다.

“지나간 일에 대해선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 돌이켜 볼 기회가 생기면 ‘그래 못한 것보단 잘한 게 많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요. 어딘가에 제 얼굴을 새긴 동상 하나쯤은 남겨놓고 은퇴하고 싶습니다. 하하.”

70대가 되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는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사건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1990년 2집 활동 이후 대마초 사건에 휘말렸고, 톱스타와의 결혼과 이혼 등 굴곡진 인생을 살았기에 개인사 중 하나이겠거니 으레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그가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건 지난 2007년 8집 ‘소리쳐’ 표절 사건 때라고 말했다. ‘소리쳐’는 당시 영국가수 가레스 게이츠의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인간적으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가수로선 잘한 게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소리쳐’ 표절 사건이 났을 때에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노래를 발표하는 건데 표절한 곡인지 알고 갖고 나오진 안잖아요. 당시 ‘소리쳐’ 표절 시비로 무대 설 수 없을 만큼 많은 비난이 쏟아졌을 때 ‘아 이제 내려가야 할 때가 온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에게도 ‘여보, 나 이제 은퇴할까’라는 말을 했을 정도니까요.”

이승철은 ‘소리쳐’가 표절에 휘말리자 곧바로 원작자에게 ‘소리쳐’ 음원을 넘겨 표절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소리쳐’는 멜로디의 표절보다는 분위기가 흡사한 것 같다”는 답을 얻어 ‘소리쳐’를 공동 작곡으로 수정해 대중의 질타와 분노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표절 시비가 나면 한 곡에 3~4억을 들여서 만든 제작자와 그 노래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가수가 정말 큰 피해를 입게 되요. 표절은 가수나 제작자에게 ‘죽어라’ 하는 말과 다름없죠. 홍진영 씨는 누구보다 억울했겠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좋은 노래가 매장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공동 작곡으로 노래를 살렸고, 지금은 콘서트 엔딩 곡으로 자주 쓰일 정도로 대중의 많은 사랑받는 노래가 됐어요. 표절 시비는 일부분 흡사하기만 해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게도 표절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남아있고요.”



표절 논란에 휩싸여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매주 주말 콘서트를 통해 만나는 관객을 볼 때마다 ‘가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데뷔 초와 비교해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냐고 묻자 ‘인간적 성숙’을 꼽았다.

“전 비교적 운이 좋아서 어린 나이에 노래를 시작할 수 있었고, 무명 시절도 적어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었죠. 그런데 인간적 성숙이 덜 된 상태에서 스타의 자리에 올랐기에 여러 가지 실수를 했던 것 같아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 시절로 돌아가 완벽한 인격체를 형성한 뒤 가수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이승철은 내달 5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25년 동안 받은 사랑을 콘서트를 통해 보답할 예정이다. MBC를 통해 향후 방송되는 25주년 콘서트는 40인조 오케스트라, 6명의 코러스, 12인조 밴드 등 화려한 규모와 사운드로 관객의 오감을 자극할 계획이다. 오케스트라와 락의 협연 등 다채로운 음악의 세계로 팬들을 안내한다.

25년 동안 달려온 이승철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웃었다. 70대 할아버지가 되어도 음악으로 사랑받는 뮤지션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쉼 없는 질주를 그치지 않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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