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이승환 “벼랑 끝에 몰린 기분…모든 걸 내려놨다”

[쿠키人터뷰] 이승환 “벼랑 끝에 몰린 기분…모든 걸 내려놨다”

기사승인 2010-06-14 11:12:00

"[쿠키 연예] 데뷔 21년차 베테랑 가수 이승환. 하루 새 인기 있는 음악이 바뀌고 신인 가수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요즘, 한 자리에서 20여 년 동안 건재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드림팩토리’에 마련된 사무실 한쪽 벽면 상단을 채운 그의 앨범들은 굴곡진 인생 역경을 이겨낸 ‘만년가수 이승환’의 위상을 오롯이 드러내는 듯 했다. 지난달 26일 발매된 10집 앨범 ‘드리마이저’(Dreamizer)를 포함해 지난 21년 동안 정규 10장, 미니 1장, 라이브 DVD 5장, 프로젝트 5장, 베스트 2장, 리패키지 1장 총 24장을 발표하며 팬들과 수시로 만났다.

21년간 ‘고인 물’이 아닌 ‘흘러가는 물’이 되기 위해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며 팬들에게 청량한 음악을 선사하는 가수로 남고 싶었다는 이승환.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정한 엄격한 규정에 따라 스스로를 단련시켜 온 부지런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10집은 그의 음악적 노하우가 집약된 앨범이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인고(忍苦)의 열매다. 수시로 ‘위기’와 ‘현주소’를 운운하는 모습에서는 이번 앨범에 사활을 걸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자조 섞인 말투에 자못 놀랄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노래가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평가받길 원하는 그만의 에두른 표현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히트곡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걸었어요. 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마치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에요. 지난달 4일 ‘이별 기술자’라는 곡을 선 공개했는데 첫날만 반짝하고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머물다가 며칠 지나고 보니 500위 안에도 없더라고요. 그때 ‘아 이게 내 현주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신을 다해 만든 앨범인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죠.”

이승환이 전곡 작사한 이번 앨범은 ‘대중성’에 가장 큰 무게를 뒀다. 그동안 화려한 미사어구와 난해한 문장들로 팬들과의 음악적 공감대가 미미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10집에서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편한 가사와 쉬운 멜로디에 집중했다.

“뜻 모를 가사들을 많이 쓰고 소위 ‘옹알이 창법’이라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른 적이 많았는데 ‘어렵다’ ‘잘 안 들린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번에는 쉽게 갔습니다. 원래 22곡을 녹음했는데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9곡이 제외되더라고요. 요즘 음악 어렵게 하면 팬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니까요.”

타이틀곡은 발라드 장르의 ‘반의 반’과 팝 멜로디가 조화를 이룬 ‘완벽한 추억’으로 정했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 그가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수천 번 반복해서 들은 탓에 노래에 사용된 악기들의 음을 모조리 외웠을 정도다.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걸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답은 간단하더라고요. 제가 불렀을 때 편안한 곡이면 대중도 좋아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죠. 제가 그동안 센 록 음악이나 낯선 장르에 도전해 듣는 입장에선 어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대중이 원하는 색깔을 고려하다 보니 타이틀곡 중 하나가 발라드 장르가 됐고요. ‘반의 반’과 ‘완벽한 추억’은 둘 다 편안하게 불렀습니다.”

그가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다채로운 음악을 내놓았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대중성이 부족했고 울림이 약한 노래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데 취미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가수는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외골수 노래쟁이’였기에 앨범 투자에 돈을 더 들일망정 자신을 홍보하는 데에는 병적으로 인색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기 PR’ 시대인 만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한층 유연해진 태도로 문화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는 앨범만 내놓으면 끝이었는데 요즘은 문화가 바뀌어서 홍보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더라고요. 물론 세태가 바뀌었다고 저의 행동양식이 꼭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이제 조금씩 저를 드러내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열심히 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어야겠죠.”



그는 21년 동안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승환’으로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동안외모’ ‘어린왕자’라는 나이와 외모에 얽힌 별명과 편견 때문에 왜곡 평가돼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기자에게도 ‘어린왕자’라는 표현은 절대 삼가달라고 신신당부했을 정도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하면 안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17년 전부터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지 점점 무감각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동안’이 가수에게는 꼭 플러스 요소로만 작용하지 않더라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주름도 생기고 살도 탄력을 잃는데 전 그 별명 때문에 늘 어려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는데다 외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플란다스의 개’처럼 순수하고 발랄한 노래만 불러주길 바라는 팬들의 기대감도 많고요. 시끄러운 음악을 하고 거친 말을 퍼부으면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듯 불쾌해하는 분들도 있으시더라고요.”

이승환은 ‘나이’ ‘외모’를 뛰어넘어 오로지 ‘가수’로만 평가받고 싶어 했다. 이번 10집은 지난 21년 동안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앨범이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들을 기대케 하는 ‘꿈’과 ‘희망’을 노래한 앨범이기도 하다. 지난 20년을 세월의 뒤안길로 보내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한 신인으로 출발했다는 이승환. 가수 이상의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으로 성장하길 소원했다.

“외국의 유명 아이돌 가수 음악은 20~30대가 아니라 50~60대의 연륜 있는 뮤지션들이 만들어 내거든요. 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고요. 우리나라는 ‘나이에 맞는 음악을 하라’며 뮤지션들을 틀에 가두려고 하죠. 전 자유로운 상태에서 음악과 호흡하며 살고 싶어요. ‘아임 얼라이브’(I''m alive) ‘난 살아있다’고 스스로에게 외치죠. 빠르지 않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진화하는 음악인’, 이승환이 지난 21년 동안 꿈꿨고 지금도 갈망하는 그의 목표다.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한 심경으로 만든 이번 10집 앨범이 그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촉매제가 되길 바라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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