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국언 사무국장은 14일 “미쓰비시 중공업 측이 본사 총무부장 명의로 오늘 공문을 보내왔다”라며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과 관련한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최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미쓰비시 중공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면서 “협상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해서 15일까지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했는데 시한 내에 연락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지난달 22일 항의 방문단을 구성해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를 직접 찾아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 12만 6000명과 국회의원 100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 용지를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은 회사 관계자들과 2시간 동안 면담하는 자리에서 7월15일까지 근로정신대 문제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만약 화답이 없을 경우 모든 조취를 취해 ‘반(反) 미쓰비시’ 활동을 전개할 것이고 경고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주총일인 24일 본사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방문단에는 근로정신대 출신 양금덕(82) 할머니,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광주유족회 이금주(91) 회장, 이용섭 국회의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이 사무국장은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 고위직이 포함된 회사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이들이 한국 내 여론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라며 “이후 회사 측에서 내부 검토에 들어가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들었다. 상당한 논의 끝에 일정한 사죄와 보상을 전제로 협상 테이블에 나오겠다고 응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사무국장은 또 “일본 전범기업 중 상징적인 존재가 미쓰비시”라면서 “일본 기업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 피해자들과 협상하겠다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 측과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본격적인 협상은 다음달 중 시작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보상 범위나 사죄의 정도는 논의 과정에서 정해질 예정이지만 양 측의 입장이 엇갈려 협상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시민모임 측은 협상 진척에 따라 지난해 1월30일부터 매주 금요일 서울 대치동 미쓰비시 중공업 한국사무소 앞에서 개최해온 항의 시위를 중단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란 일제강점기 1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 중공업 군용 항공기 제작공장에 강제동원돼 노역에 종사했던 피해자들을 일컫는다. 광주 전남 지역에서 150여명, 충남 지역에서 150여명 등 300명 이상이 끌려갔으며 현재 생존해 있더라도 80대 고령이 대부분이다. 소송에 나선 피해자 일부에게 지난해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 탈퇴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99엔(한화 약 1250원)을 지급키로 해 국민적 분노를 산 바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차량과 선박, 각종 터빈, 발전기 등을 제조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종업원 수가 계열사를 합쳐 총 6만2000명이며 전체 매출은 4조4000억엔이다(2008년 기준).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아리랑3호 위성발사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시기 나가사키 조선소에만 4700명을 배치하는 등 많은 조선인들을 노무자로 강제동원했다.
일본 학자 및 시민운동가들이 2006년 발간한 ‘전쟁책임 연구’에 따르면 미쓰비시 그룹의 전체 작업장에 끌려간 조선인은 총 10만명에 달했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아 공식 피해 판정을 내린 숫자만으로도 미쓰비시가 3355명을 기록해 미쓰이, 스미토모 등 다른 재벌그룹을 제치고 단연 최다를 기록 중인 사실이 본보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