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영화人] ‘초능력자’ 김민석 감독, 세상에서 고립된 자 VS 세상에 뒤섞인 자

[Ki-Z 영화人] ‘초능력자’ 김민석 감독, 세상에서 고립된 자 VS 세상에 뒤섞인 자

기사승인 2010-11-13 13:02:01

"[쿠키 영화] ‘꽃미남 배우’ 강동원과 고수가 뭉쳐 하반기 흥행작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 <초능력자>. 두 배우의 티켓 파워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지난 10일 개봉 3일 만에 43만 880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13일 기준, 전야상영 및 유료시사 포함)을 동원하며 침체된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고수와 강동원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조연출로 활약한 <괴물>(2006)과 각본과 조연출로 힘을 보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차근히 실력을 쌓아온 신인 감독 김민석(33)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탁월한 연출력으로 감독 데뷔 6년 만에 첫 장편을 내놓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면 쉽사리 출연하지 않는 강동원을 시나리오 초고만으로 넉다운시켰고, 다수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고수까지도 동참하게 만들었다. 2004년 단편 <올드보이의 추억>으로 기성 감독들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김민석. 투자 불순환에 따른 제작비 절감으로 바짝 얼어붙은 한국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단 영화를 내놓는다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으며, 상업적으로 검증받지 못한 신인 감독에게 투자자들도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제작사 영화사집은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메가폰을 맡겼다.

첫 장편은 감독에게 첫사랑과도 같다. 한 번 경험하게 되면 평생 잊을 수 없는 달콤하면서도 매서운 기억이 되고, 끊임없이 메아리쳐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된다. 김 감독은 추억의 첫 장을 ‘초능력’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다소 의외였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연출하기도 까다롭거니와 흥행 코드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소재인 탓에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드문 이야깃거리다.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눈으로 사람을 조종한다’는 설정을 머릿속에 갖고 있었는데 생각만 하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됐어요. 일단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잡히고 나니까 장애를 갖고 태어나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비범한 능력으로 인해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초인’과 낙천적 성격과 사교성으로 사회에서 뛰어난 흡수력을 보여준 ‘규남’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니 ‘초능력’은 이제의 핵심이 아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구가 된 거죠. ‘초능력’이라는 특성에만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나 볼 법한 배트맨처럼 (손짓을 해가며) 이렇게 날아다니거나 다 때려 부수는 장면으로 도배가 됐어야했죠. 그렇지만 이건 능력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초능력’으로 인해 빚어진 일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생기게 된 겁니다.”

<초능력자>는 눈으로 사람을 조정하는 능력을 가진 ‘초인’(강동원)이 유일하게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평범한 회사원 ‘임규남’(고수)을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김 감독의 말대로 공중 10회전에 도로를 점령하고 빌딩 위를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초능력을 가진 위대한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로부터 고립된 ‘초인’과 대중에 파묻힌 ‘규남’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초능력을 가진 자와 자신의 능력을 잊고 산 자가 ‘자아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기에는 ‘규남’이 선한 사람처럼 ‘초인’은 악한 사람처럼 비쳐지는데요. 사실 두 사람 모두에서 선하고 악한 성향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그게 자신을 알기 시작하면서 표출되기 시작하는데요. ‘초인’이 ‘규남’을 만나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자기 자신을 보면서 기력을 잃어가죠. 반면에 ‘규남’은 세상에 파묻혀 살다가 ‘초인’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믿게 되고요. 우리도 세상 속에 섞여 살면서 ‘좋은 집으로 이사했으면 좋겠다’ ‘대출 빚은 언제 갚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모를 때가 많잖아요. 자신을 점점 잊어가고 있는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초능력자>는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긴장되며 적당히 교훈적이다. 김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탄탄한 스토리 전개로 인해 균형감을 확보한 것이다. 제작발표회 때 먼발치에서 바라본 김 감독은 기자의 질문에 쑥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자주 주로 보여준 순박한 청년처럼 보였다. 규범에 적당히 타협하는 평범한 부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 마주 앉은 김 감독은 인터뷰 10분 만에 자신의 성격을 보여줬다. 거칠지만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농담을 섞으면서 말하는 재주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평범한 생각을 하는 것을 지양하는 개성 강한 사람이었다.

“할리우드처럼 물량 공세로 만들 수 없기에 현재 상황에서 모든 걸 동원해 표현해야 했습니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이야기를 풀기에 마냥 쉬운 게 아니었기에 영화 전체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죠. 초능력만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자니 허황되거나 가벼워 보일 수 있고, 사회적 이야기를 하자니 무겁게만 다가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장르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균형감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김 감독의 웃음 코드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는 ‘버바’(아부다드·가나)와 ‘알’(에네스카야·터키)이다. ‘버바’와 ‘알’은 ‘임규남’이 폐차장에서 일할 당시 사귄 외국 친구로, 고집이 있으나 우정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의리파다.

이들의 활약은 첫 등장부터 빵빵 터진다. 한국인보다 더 조리 있게 말하는 ‘알’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버바’는 작품 내에서 ‘미친 존재감’임을 매 장면마다 확인시켜줬다. 이들이 없었다면 주인공 ‘규남’은 밋밋한 캐릭터에 그쳤을지 모른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외국 배우는 우스꽝스러운 언행으로 단순히 웃음만 생산해내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초능력자> 속 ‘알’과 ‘버바’는 다르다. 이들의 등장은 정당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감독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제3자의 눈에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국내 배우가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사를 하면 진지하게만 느껴질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외국 배우의 입을 빌리면 사회를 비꼬는 내용도 유머가 될 수 있고, 코미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들을 캐스팅했죠. 에네스카야는 제가 만난 외국인 중에서 가장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였고요. 아부다드는 한국말이 서툴지만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 강했어요. 다채로운 인종을 넣음으로 인해 다양성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이걸 크게 보면 하나의 지구처럼 보이는 거죠.”

어떤 것이든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늘 아쉬움이 따르는 법이다. 특히나 첫 장편은 감독에게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후회 없이 모든 걸 다 쏟아 넣었다”며 지금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최선을 다했음을 털어놨다.

“첫 장편을 내놓는 감독은 밤잠을 쪼개가며 다들 열심히 했을 거예요. 저도 그랬죠.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하고 긴장하고 노력했습니다. 조연출을 했을 때에는 감독이 의도한 것을 뒤에서 도와주고 세팅된 촬영장에서 진행만 하면 됐는데 총 감독을 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제가 다 책임지고 해야 하더라고요.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과연 내가 상상한 장면을 이렇게 연출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거였어요. 막상 해놨는데 촬영을 못하면 돈을 길거리에 뿌리는 것과 다름없었거든요. 막대한 책임감을 갖고 임했던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김 감독은 젊은 만큼 욕심도 많았다. 가족 코미디, 메카닉물, 멜로 등 도전하고 싶은 장르도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초능력자> 생각뿐이다.

“촬영이 끝나고 개봉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초능력자>에 미쳐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지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절 믿고 투자해주신 분들과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네요. 욕심 같아선 300만 정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과연 될까요? 하하하.”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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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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