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소독약 부메랑] 대부분 고농도로 희석… 가임기 여성까지 방역에 투입

[구제역 소독약 부메랑] 대부분 고농도로 희석… 가임기 여성까지 방역에 투입

기사승인 2011-05-06 14:18:00
방역 현장엔 기본적 매뉴얼도 없었다

정부는 방역의 기초가 되는 구제역 소독약의 유효 희석비율도 제대로 정해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선 얼마만큼 소독약을 뿌려야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고농도의 소독약을 대량으로 살포할 수밖에 없었다. 방역 요원들은 약제의 독성과 개인 보호대책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현장으로 투입됐다.

◇주먹구구식 방역=5일 동물용 의약품 생산자 단체인 한국동물약품협회에 따르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허가받은 구제역 방역용 소독약의 경우 대부분 용법·용량을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독약은 바이러스·세균 종류에 따라 효력시험을 거쳐 바이러스·세균이 죽는 희석비율을 정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가축에 치명적이라 국내 효력시험이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기초 중의 기초로 꼽히는 유효 희석배수가 정해지지 않은 까닭에 현장에선 주먹구구식으로 방역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불안감 탓에 정해진 희석비율보다 고농도로 소독약을 배합하는 게 일반적인 심리이다. 게다가 방역 당국이 “제품 설명서에 적혀 있는 범위에서 고농도로 희석해 사용하라”고 권장해 약품의 남용을 부추겼다.

이런 탓에 한국동물약품협회는 지난 2일부터 ‘구제역 소독약 사용방법 개선시험’ 주관기관을 직접 공모 중이다. 해외 기관을 이용해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효력시험을 실시해 유효한 희석배수를 구해 줄 연구기관을 찾겠다는 것이다.

◇가임기 여성 공무원까지 현장 투입= 방역요원들은 고농도의 소독약을 뿌려대는 동안 제대로 된 방호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최근 경북 안동, 충남 보령, 충북 청원, 경기도 포천 지역 방역 현장에 투입됐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대다수 방역요원들은 소독약을 호스로 직접 뿌리거나 자동분사기로 뿌릴 때 바람을 타고 코로 흡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고 답했다. 현장 투입 전 사전 교육에 대해서는 대부분 형식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복장은 대체로 갖춰 입었다고 자평했지만 환경부가 권고하는 유독물 취급 정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환경부는 알데하이드류를 취급할 때 보호안경·장갑, 공기호흡기, 화학물질용 방호복 등을 착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방역요원들은 공기호흡기 대신 간단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 현장에 투입됐고 보호안경을 벗은 채 약품을 살포하기도 했다.

가임기의 여성 공무원들이 대거 방역 현장에 투입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여성 공무원들은 주로 주간 방역조에 편성됐고 여성 수의사들도 대거 현장에 투입됐다.

◇사상자 소독약 영향 의심=지난 1월 전북 군산시 농촌지도사 김모(여)씨는 방역초소에서 근무하던 중 어지럼증과 구토증상을 보인 뒤 3일 만에 뇌출혈 증세로 입원해 중상자로 분류됐다. 일주일 뒤 경기도 의정부에선 사회복지 담당 6급 원모씨가 방역활동 중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 귀가한 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지만 숨졌다. 어지럼증과 구토, 가슴 답답함은 고독성 소독약의 급성 독성에 의한 전형적인 증상으로 꼽힌다.

독성학을 전공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방역 요원들이 개인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고독성 소독약을 사용했다면 중독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상자 193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낙상 또는 졸음운전 등도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소독약에서 비롯된 증상일 개연성이 크다. 글루타알데하이드를 흡입할 경우 졸림, 긴장 완화, 반사작용 둔화, 근육 운동 축소, 현기증 등의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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