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대본 보면서 그냥 느낌이 오는 대로 했어요. 계산하면서 연기할 줄 모르거든요.”
지난 40년 동안 100여 편의 작품에서 혼을 쏟아냈던 베테랑 연기자다운 대답이었다. 배우 김영애(61)는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공순호’ 역을 가슴으로 연기했다. 김영애의 진솔한 연기를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JK그룹의 냉철한 CEO이자 정가원을 일으킨 안주인 ‘공순호’가 탄생했다. 대사 한 마디, 눈빛 한 번에 시청자는 전율했고, ‘공순호’의 날카로움은 드라마를 한층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회 방송이 전파를 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틀 정도 시름시름 앓다가 술과 함께 ‘공순호’를 떠나보냈다는 김영애. ‘공순호와 이별했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에게서는 여전히 ‘공순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특히 흔들림 없는 강렬한 눈빛이 닮아 있었다.
“촬영 전, 편히 쉬다가도 큐 사인이 떨어지면 몸에 ‘공순호’가 들어갔어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눈빛과 말투부터 확 달라졌죠. 배에 힘을 꽉 주고 몸을 꼿꼿이 세우는 빈틈없는 인물이라 다른 드라마를 소화할 때보다 기운이 많이 소모됐고요. 한 회 찍고 나면 몸에 힘이 쫙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김영애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에 반했다”는 시청자 호평이 줄을 잇기까지 매일 밤샘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심할 경우 4박5일 동안 9시간 정도 눈을 붙일 때도 있었다. 모처럼 귀가하는 날이라도 침대에 누워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 잠과 시간과의 사투였다.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솔직히 무서웠어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촬영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체력이 바닥나더라고요. 아주 가끔씩 여유가 생기는 날에는 잠을 자고 싶어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제대로 쉴 수 없었죠. 그런 날에는 막걸리 3~4잔을 연거푸 마시고 술김에 잠들었어요. 만약 한 달만 더 촬영했으면 병원 신세를 졌을지도 몰라요.”
혼을 불사른 김영애의 연기는 브라운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시청자는 김영애의 정교한 연기를 보며 “‘공순호’는 김영애가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던 캐릭터”라는 찬사를 보냈다. 2011년 MBC 연기대상 대상감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음…. (MBC 연기대상 대상) 욕심 낼 나이는 지났죠. 물론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 좋아요.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요.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무서운 게 없어서 그런가 봐요. 좋은 대본을 보며 마음껏 연기한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죠. 배우에게 인기는 거품이에요. 또 인기에 휩쓸려 발이 동동 떠다닐 나이도 아니고요. 어느 기사에서 ‘김영애가 황토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런 연기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보고 ‘아. 이게 내게 최고의 칭찬이겠구나’ 생각했어요(웃음).”
‘공순호’는 둘째 며느리 ‘김인숙’(염정아)을 찬밥 취급하고,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기 위해 음모도 불사하는 인물이다.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영애는 ‘공순호’ 캐릭터에 대해 “100% 공감한다”고 털어놨다. 자신도 사업가로 8년 정도 살아왔기에 ‘공순호’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공순호는 일반 사람들과 인생의 목표가 다른 사람이었어요. 여자로서는 한 남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픔이 있죠. 그는 철저히 사업가였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공순호가 저지른 행동들은 정당하다고 봐요. 공순호에게는 일상의 소소함보다 사업의 성취감이 더 중요한 인물이거든요. 저도 사업을 해 봐서 어떤 기분인지 알죠. 사업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어요.”
‘공순호’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김영애는 드라마의 극적 결말 부분에서는 아쉽다고 토로했다. ‘김인숙’과 ‘한지훈’의 죽음보다는 JK가문의 암투에 좀 더 무게감이 실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두 사람의 죽음에 집착하기보다는 JK가문의 다툼과 성공이 좀 더 섬세하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원작을 따라가다 보니까 그런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는 되요. 하지만 JK가문 사람들의 뺏고 뺏기는 힘겨루기가 좀 더 짙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끝났으니 어쩔 수 없네요(웃음).”
카리스마 넘치는 사업가의 모습을 보여준 탓에 여기저기서 사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김영애는 단칼에 거절했다. 사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두 번 다시 사업에 손을 대지 않을 계획이다.
“홈쇼핑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앞에 통화 수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기록이 쫙 떠요.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흘러가죠. 그때 시절 생각하면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예전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겹치기 출연을 많이 했는데요.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 골라가면서 연기할 수 있게 됐어요. 사업을 통해 잃은 게 많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생겼거든요. 앞으로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작품을 찍고 싶어요. 잘 익어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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