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issue] “돈보다 열정”…스타배우 노 개런티 출연, 왜?

[Ki-Z issue] “돈보다 열정”…스타배우 노 개런티 출연, 왜?

기사승인 2011-07-04 13:03:00

[쿠키 연예] 단순히 흥행만으로 배우의 입지를 높이는 시대는 지났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작품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저예산의 독립영화가 관객 300만 명을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화려한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포진한 영화는 그만큼 투자 대비 수익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잘 팔리는 영화’를 표방하며 상업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고,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대중적인 코드가 약한 영화들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경제적으로 열악하다. 때문에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필모그래피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무보수 출연을 자청한다. 아무리 저예산영화라 할지라도 질 높은 콘텐츠는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배우들의 ‘노 개런티 출연’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감독과의 친분 등으로 잠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주연배우로 출연하면서 돈을 받지 않는 사례를 흔히 만날 수 있다. 특히 톱스타들의 출연료를 맞추기 힘든 저예산 영화에 이러한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배우들은 수익을 떠나 영화를 선택하는 폭을 넓히고 배우로서의 가치를 실험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무형적 가치와 감독에 대한 신뢰에 비중을 두는 편이다. 스타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일임은 분명하다. 또한 해마다 치솟는 제작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자는 적극적 움직임이기도 하다.

지난달 개봉한 김기덕필름의 영화 ‘풍산개(전재홍 감독)’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규리와 윤계상은 나란히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김규리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며 “감독의 첫 작품 출연 제의를 고사한 적이 있어서 늘 마음에 두고 있던 터에 출연 제의를 받고 흔쾌히 결정했다”고 말했다. 앞서 옴니버스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2009)’에도 출연료 없이 함께했던 윤계상은 “가수 출신으로서 배우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작품성과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일 수 있는 작품에 손이 먼저 갔다”고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풍산개’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주인공(윤계상 분)이 북한에서 망명한 고위층 간부의 여자 인옥(김규리 분)를 배달하라는 미션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남북 분단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와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승화시킨 영화다. 단돈 2억 원을 투자한 ‘풍산개’는 개봉 4일 만에 28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4일 현재 관객 5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배우 현빈과 임수정 또한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나란히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애인이 생겨 집을 나가겠다는 결혼 5년 차 여성과 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남편이 이별을 앞둔 상황을 그린 영화로, ‘여자, 정혜’ ‘멋진 하루’ 등의 영화를 선보인 이윤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작품은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아시아 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현빈은 매체 기자들과의 라운드 인터뷰에서 “돈을 떠나 영화를 만들고 연기한다는 사실이 즐겁고 기쁘다. 배우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는 건 행복한 일”이라며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똘똘 뭉친 영화라 그 자체로 좋았다. 경제적 부분을 떠나 나도 그들 사이에 끼고 싶어 참여한 영화”라고 출연한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임수정 또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노력하고 고생하는 제작자와 감독들이 많지만 제작 환경은 좋아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참여했다”며 영화배우로서 일종의 사명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 성유리는 스크린 데뷔작 영화 ‘토끼와 리저드(2009)’에 출연을 결정하면서 주지홍 감독에 대한 신뢰와 감성적이고 탄탄한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료 전액을 제작비로 투자해 눈길을 끌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장혁 또한 뜻을 함께했다. ‘토끼와 리저드’는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아 ‘메이’(성유리 분)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희귀한 심장병 민히제스틴 증후군으로 매일 세상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남자 ‘은설’(장혁 분)이 우연히 마주친 후 동행하며 펼치는 가슴 아픈 상처와 사랑을 그린 영화다.

고현정과 최지우, 이미숙, 김옥빈, 김민희, 윤여정 등 톱여배우 6인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여배우들(2009)’ 또한 출연배우들이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개봉 후 수익에 따라 러닝 개런티를 받는 계약도 맺지 않았다. 이재용 감독에 대한 믿음 하나로 출연을 결심했다. 이미숙은 ‘정사’, 김민희는 ‘순애보’, 김옥빈은 ‘다세포 소녀’에서 함께 작업한 인연이 있으며 고현정과 윤여정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여배우들’은 잡지사 패션 화보 촬영장을 배경으로 톱 여배우들의 솔직 대담한 이야기를 담는 작품으로 출연배우 모두 본인 이름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배우들이 돈을 받는 경우를 찾기가 더 힘들다. 지난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고현정과 김태우, 엄지원, 공형진 등의 배우들이 모두 출연료 없이 연기했으며 제작비로 단돈 5천만 원을 들인 ‘옥희의 영화’를 비롯해 ‘하하하’ ‘밤과 낮’ 등 수많은 작품에 배우들이 기꺼이 무보수 출연을 자청했다. 홍 감독은 몇몇 배우들에게 출연료 대신 작은 크리스털 감사패를 전달하며 ‘노 개런티’의 미안함을 대신했다.


장근석은 살인사건 용의자 피어슨 역을 맡았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2009)’에서 거의 무보수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장근석은 “처음부터 고액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아니었다. 규모가 점점 커진 영화다. 출연료를 거의 받지 않았다”며 “영화가 커머셜한(상업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배제돼 있어 좋았다. 오락적 면을 강조해 관객을 더 동원시키는 것보다 실제 이태원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피해자인 고인을 기리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며 출연 이유를 털어놨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실제로 1997년 4월 일어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재미 삼아 무고한 대학생 살해한 2명의 10대 한국계 미국인 용의자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진범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변혁과 허진호, 유영식, 민규동, 오기환 등 유명 감독 5명이 공동 연출하고 김수로와 장혁, 배종옥, 김민선, 엄정화, 김효진, 신세경 등 16명의 스타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오감도’ 역시 모두 노 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임순례 감독은 지난 2009년 턱없이 모자란 예산에도 불구하고 문소리와 박인환, 정혜선 등 배우들의 노 개런티 출연으로 무사히 영화 ‘날아라 펭귄’을 만들 수 있었다.

1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김지호도 반려견을 통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에 깨달음을 얻게 되는 미술관 큐레이터 역을 만은 ‘미안해 고마워(감독 임순례)’에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평소 동물 보호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영화 제작 의도에 깊이 감명받아 이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연기파 배우 윤제문 또한 평범한 공무원이 홍대 앞 인디밴드를 만나 심리적 변화를 겪는 이야기인 ‘위험한 흥분’(감독 구자홍)에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문성근과 추자현이 노 개런티로 출연했던 스릴러 영화 ‘실종(2009)’은 개봉 첫 주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기쁨을 안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순제작비 6억 원으로 130만 관객을 동원한 소지섭, 강지환 주연의 액션 영화 ‘영화는 영화다’의 경우,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계약금을 작품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참여 제작비를 최소화시킨 사례도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풍산개’ 또한 스태프가 투자자였다. 노 개런티로 참여하는 대신 지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감독부터 출연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가 투자자가 되는 식이다.

부쩍 늘어난 노 개런티 출연은 침체된 영화계의 활력소로 작용하며 높은 귀감을 사고 있다. 특히 몸값이 높은 배우들의 경우, 출연료를 받지 않음으로써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뜨거운 애정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진 열정은 일종의 한국 영화의 희망으로 평가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몸값이 제작환경을 압박하는 큰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일부 배우들은 출연료를 자진 삭감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노개런티 출연은 눈앞의 목표를 위한 고육지책일 뿐 열악한 한국 영화 제작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배우 문성근은 지난해 자신이 출연한 영화 ‘노근리 사건’이 4년 만에 개봉하자 “거물급 투자자들은 실패를 원치 않기 때문에 대박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영화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 비판적 영화라면 더욱더 투자자를 구하기 어렵고 정부 지원도 받기 어렵다”며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제작이 어려워질수록 영화인들이 직접 투자를 하고 ‘작은 연못’처럼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는 등 몸으로 때우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분명 대본이 좋아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장될 작품이 수두룩해질 것이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로 노개런티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오직 감독과 배우의 무한한 신뢰만으로 작품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노 개런티로 출연하는 배우들의 열정에 박수만을 보낼 수 없는 까닭은 바로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노 개런티 출연에는 국내 영화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이 개선되길 바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요즘 배우들은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욕심나면 대부분 주저 없이 출연료 없는 제의에 흔쾌히 응한다”며 “노 개런티는 열악한 제작 환경을 말해 주는 반증인 만큼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다양한 투자 제도와 구조적인 개선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 사진=쿠키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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