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뮤지컬 ‘잭 더 리퍼’…당신 안에도 ‘살인마’가 있다

[Ki-Z 공연] 뮤지컬 ‘잭 더 리퍼’…당신 안에도 ‘살인마’가 있다

기사승인 2011-07-18 12:44:01

[쿠키 문화]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라도 살면서 그런 생각은 한두 번쯤 하게 된다.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든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때다. 우리는 평생 살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타인의 존재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잭 더 리퍼’를 보고 있자면,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잭 더 리퍼’는 무려 100년 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1888년 영국에서 발생한 잭 더 리퍼 사건의 미스터리를 토대로 제작됐다. 영미권에서는 보통 미상의 인물을 표현할 때 가장 흔한 이름인 잭을 붙여 부르는데, 잔인한 살인마라는 뜻의 ‘리퍼’가 더해져 연쇄 살인자는 ‘잭 더 리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살인마에게 희생당한 5명의 여인들은 가해자가 의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교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희생당했다. 당시 피해 여성의 장기가 도려내어 져 시체 옆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범인의 직업은 의사, 도살자, 박제사로 추정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살인마인 잭에 대한 매우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동정할 수밖에 없는 살인마를 그리되, 현대의 관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이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 첫 곡인 ‘회색도시’의 제목처럼 작품은 전체적으로 잿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 붉은 색 드레스를 입은 매춘부는 살인마의 먹잇감이 되고, 특종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팔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문기자와, 사랑하는 연인을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영원히 잃게 되는 형사 등 하나 하나의 캐릭터가 정당성을 부여받고 관객에게 입장을 호소한다. 기승전결이 뚜렷이 구별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장면 하나하나의 이미지에 여운이 서리도록 연출됐다.

‘잭 더 리퍼’는 2009년 국내 초연 후 매해 꾸준히 사랑을 받는 뮤지컬이다. 올해에는 더 세련된 무대와 캐릭터 해석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강한데, 촘촘히 짜여 진 구성과 긴장감 넘치는 극 전개는 관객들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신성우와 유준상, 안재욱, 김법래, 민영기, 엄기준 등의 배우들의 호연도 이러한 무대를 더욱 빛나게 한다. 신성우는 카리스마와 연륜으로 빚어진 무대 장악력을 보여 줬고, 안재욱은 명민하고 절제된 연기로 관객을 압도 했으며 민영기의 노련한 연기 또한 큰 박수를 받았다.

자칫 장르나 소재의 잔혹함에 대한 부담을 느낄 만한데 ‘잭 더 리퍼’는 때로는 멜로로, 코미디로, 스릴러로 매번 다른 무대로 환기를 가져 오고 관객들에게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애정관계와 살인사건 및 추리를 그려내면서 미스터리 멜로를 표방했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이 끊임없이 갈구하는 진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세련된 스타일과 대사, 미묘한 심리 묘사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단순히 오락으로서가 아닌 자아에 대한 통찰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져다주는 것 또한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잭 역을 맡은 신성우는 지난달 현장 공개에서 “다소 무거운 작품이긴 하지만 살인마 이야기를 로맨스로 창출해 내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며 “누구나 가슴 속에 ‘잭’은 있다. 선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뒤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게 이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 말미에는 반전이 숨어 있는데, 올해에는 뮤지컬 공연 특성상 여러 번 관람을 하는 관객을 고려해 마지막 반전만을 위해 달려가는 전개는 일부러 피한 모양새다. 반전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결국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관람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잭 더 리퍼’는 내달 14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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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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