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권의 댓츠 베리 핫]
[쿠키 문화] 음악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 때문에 술이 넘어갑니다
[쿠키 연예] 요즘 음반심의제도 때문에 음악계가 후끈하다. 여성가족부의 심의 기준이 큰 웃음을 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음반사전심의제도폐지 사건 이래 이번처럼 심의와 관련한 논란이 전면에 부각되고 지속된 경우는 없었기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심의기관의 횡포에 제동을 건 결정적인 세력이 아이돌 팬덤이라는 사실은 좀 씁쓸하지만(오해는 마시라. 팬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정작 강하게 항의했어야 할 음악인들의 소극적 대응이 아쉬웠다는 이야기이니…), 어쨌든 언젠가 한 번 크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기에 지금 같은 분위기는 아주 반갑다.
일단 난 현 심의제도의 문제점(과도하고 모호한 심의기준, 어긋난 형평성 등)에 대해 되새김질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날 국내 음반심의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 전문가와 언론이 시원하게 까발리고 있으니까…. 단지 그들(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음반심의위원회)이 오늘날 장르 음악 발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역설하고 싶다.
이 바보 같은 심의제도 때문에 창작행위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어 온 건 자유롭고 다양한 주제와 표현방식을 추구해 온 인디 뮤지션들이다. 그중에서도 랩/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은 그 어느 장르보다 언어의 유희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극대화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만큼 심의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가장 논란이 되는 ‘술과 담배’를 대표적 예로 이야기해 보겠다.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랩에서 술과 담배는 주제 전달과 전체적인 분위기 형성, 그리고 라임(rhyme)을 위한 오브제로 쓰이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가사를 완성하는 데 무리는 없겠지만, 일상에서의 리얼리티를 녹여 내는 게 하나의 큰 미덕인 랩의 특성상 이러한 오브제가 거세됐을 땐 곡에 따라 장르 음악으로서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음주와 흡연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술은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하는 청소년 유해약물이며, 일상에서의 리얼리티를 고려하더라도, 그건 성인에 한한 것이니 19금 판정을 받는 것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라고…. 겉으로만 보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음반이나 음원 구매의 주된 소비층이 청소년임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다르다.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19금’ 판정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따라 뮤지션의 수익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한 명의 소비자가 소중한 게 인디나 언더 뮤지션들이다. 그렇다 보니 과도한 심의를 우려하여 최소한 대표적인 곡들만큼이라도 ‘19금’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 가사를 스스로 검열해야 할 판국이 됐다. 이처럼 본격적인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판에서 어떻게 멋진 음악이 계속 나올 수 있겠는가?! 자연스레 성인들의 관심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어린 청자들에게 음악을 못 팔아먹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술과 담배에 대한 노래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도 구시대적이다. 지난 7월 21일 이영희 음반심의위원회 위원은 ‘내일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대중가요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과 최근 발생한 (술과 관련된) 성범죄를 연관 지어 현 음반심의의 타당성을 설명했는데, 참으로 심한 비약이자 과잉보호의식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에 대한 반박 자료로 음반심의를 맡는 여성가족부가 얼마 전인 7월 21일 발표한 ‘청소년 음주실태 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싶다. 청소년의 최초 음주이유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건 ‘어른이 권해서’이며, 그다음이 ‘호기심으로’이다. 어디에도 ‘음악에서 영향받아서’라는 말은 없다. ‘호기심’을 제공한 게 음악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엔 음악 말고도 호기심을 제공할 거리가 널리고 널렸다. 더구나 청소년 음주를 막기 위해선 가정 내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알코올의존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4∼8배 높다는 통계). 만약, 청소년 음주 예방의 일환으로 음악을 심의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인력낭비, 세금낭비가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술과 담배에 대한 심의 근거 중에도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지난 7월 24일 대중가요 심의논란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시사매거진2580’에서 청소년보호위원회 맹광호 위원장은 노랫말에서 음주와 흡연에 대한 제재이유 중 하나로 ‘어려운 일을 당하고, 괴롭고, 외로운 문제를 푸는 방법이 술이나 담배’로 언급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래 국내의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중 한 명인 팔로알토의 가사 일부를 보자.
‘둘만의 축배, 수많은 문제를 거쳐 왔으니 승리를 축하해 줄게/ (중략) 오늘따라 왠지 소주 맛이 달어(표준어는 ‘달아’이지만, 라임 형성을 위해 ‘달어’로 발음했다) 후회할지도 몰라, 오늘밤이 가면’ - 2집 [Daily Routine] 수록곡 “Dreamer” 중에서.
오늘날 자신의 꿈을 실천하며 사는 청년으로서 긍정적인 고민과 다짐을 담은 이 곡에 내려진 ‘19금’ 판정의 근거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난 심의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게 절대 아니다. 단지 예술을 대하는 데 있어 꽉 막힌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제발 융통성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제까지 모든 예방을 ‘금지’라는 낡아빠진 조치로만 해결하려는지 모르겠다.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할 지식과 여력이 부족하다면, 음악 관계자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이거나 미국 대중음악계의 기준이라도 참고하시라. 그 기계적이고 비상식적인 심의 때문에 음악(특히 장르음악)이 얼마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줄 아는가!
끝으로 심의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묻고 싶다. 청소년기에 음악을 듣다가 ‘노래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걸 보면 술은 먹어도 괜찮은 거야. 오늘은 술 먹어야지.’라는 ‘초딩스러운’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게 한 곡이 있었는지, 멀쩡하게 있다가 음악을 듣고 술에 만취한 적이 있는지를 말이다. 만약 있었다면, 부디 공유 좀 해 주시길(soulgang@naver.com)…….
강일권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www.rhythm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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