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대립과 평화의 공존…무용극 ‘수상한 파라다이스’

[Ki-Z 공연] 대립과 평화의 공존…무용극 ‘수상한 파라다이스’

기사승인 2011-08-08 14:30:00

[쿠키 문화] 인간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비무장지대. 그 숭고한 자연의 위엄 아래 인간의 존엄은 존재할까. 아름다운 자연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결코 아름답다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숲이 남과 북의 벽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무용극 ‘수상한 파라다이스’는 대립과 평화가 공존하는 DMZ(비무장지대)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DMZ를 마치 하나의 파라다이스로 보면서도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수상한 곳’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표현한다. 불편하고 위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민족의 업보’라 여길 수밖에 없다고 보는 숙명론적 해석은 다양한 각도와 시각으로 표현된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 여러 명의 나신이 인상적인데, 인연과 업보로 얽힌 고리의 형상화를 표현하기 위해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한 것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초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홍승엽 씨는 무용의 대중화와 더불어 창작의 활성화를 지향하고 있는 무용단의 철학을 이번 첫 신작을 통해 여실해 증명해 냈다.

이 작품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신세대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소재의 무거움이 공연의 분위기를 누르지 않기 위한 장면들도 사이사이에 삽입됐다. 일단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 구성과 소재, 철학적 고리 등을 적절히 연결했는데 과감하면서도 섬세하고 미세한 동작 등 홍 감독의 안무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무대는 진혼과 업보, 순응, 불편한 조화, 전쟁, 연민, 기록이라는 주제의 각 신이 순서대로 오른다. 실제로 DMZ에서 봤던 총성 자국이 선명했던 커다란 벽은 무대에 고스란히 표현됐고, 드문드문 햇살이 비춰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이중적 상황은 조명으로 극명히 드러났다.

이 작품은 이념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고 남겨진 무엇이 있다고 강조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지만 단 한명은 멈춰 있다거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사각형이 아니면 아무 데나 밟을 수는 처지에 놓인다. 의자를 엉덩이에 붙인 채 등장해 첼로를 직접 연주하는 장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깊이를 표현하고, 전쟁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무대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면서 극적 환기를 가져온다. 헨릭 고레츠키의 심포니 3번과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그리고 에릭 린더의 음악은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무대를 표현하는 데 생동감을 더했다.

홍 감독은 ‘수상한 파라다이스’의 춤만큼이나 파격적인 이력을 갖고 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그는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처음 무용에 발을 들였고, 입문 2년 만에 국내 최고 권위의 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수의 무용 연기상을 수상했고,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 설문에서는 2003년과 2005년 모두 ‘최고의 현대 무용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1993년 댄스시어터온을 창단, 운영해 온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역동적이고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18명의 무용수가 출연했다. 지난 2월 오디션을 통과한 이들은 워크숍 기간을 갖고 5월부터 본격적 연습에 돌입했는데, 홍 감독이 연습보다 중요시한 과정은 따로 있었다. 바로 DMZ를 직접 방문하는 일이었다. 지난 6월 홍 감독과 무용수들은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및 DMZ 박물관을 직접 찾았다.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젊은 무용수들이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DMZ 주변을 보고 관련 역사와 스토리를 접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홍 예술감독은 “이곳은 인간의 적나라한 폭력성과 모든 것을 품는 자연의 생명력이 공존하는 모순의 공간이다. 과거의 어떤 일로 해서 만들어진 업보이든, 이 업보에서 미래를 풀어 낼 수 있는 조건이든 간에 그건 우리 민족이 가진 업보가 아닐까 싶다”며 “인간이 만든 거대한 벽은 통행을 가로막고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그만큼 자연은 보호 받았다. 이러한 이중적 면이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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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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