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작은 영화] 삶은 도돌이표처럼 순환되고…영화 ‘북촌 방향’

[Ki-Z 작은 영화] 삶은 도돌이표처럼 순환되고…영화 ‘북촌 방향’

기사승인 2011-08-20 13:03:00

[쿠키 영화] 영화 ‘북촌 방향’은 홍상수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이자 두 번째 흑백영화다.

지난해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를 개봉했던 홍 감독이 11년 만에 흑백 영화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 팬들은 여느 때보다도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홍 감독은 지난 2000년 영화 ‘오! 수정’에서 처음으로 흑백 영화를 제작했는데, 당시 흑백의 대조를 이룬 강렬한 분위기는 대상의 진실에 다가가는데 효과적으로 작용됐다. 홍 감독은 당시 “컬러의 많은 정보량이 자칫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선을 무디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흑백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무채색의 흑백 영화는 낮과 밤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를 표방한다. 목표 지향적이기 보다 과정에 중점을 둔 내러티브를 띄고 있지만 전개 과정은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영화감독 출신의 지방대 교수 성준(유준상)이 서울 북촌에 사는 선배(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머무르며 겪게 되는 기묘한 우연들을 그린 ‘북촌 방향’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관객은 그가 선배를 만나러 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목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선배를 만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고, 지나치다 마주치는 지인들과의 평범한 인사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어느 새 타인의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듯 막힘이 없이 흐른다.

영화의 주 배경은 서울 종로구의 북촌에 위치한 한 술집이다. 성준은 선배 영호를 만나면서 그의 후배인 여교수 보람(송선미)과 옛 애인 경진(김보경)을 만나게 된다. 또한 성준의 첫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중원(김의성)과 경진을 빼닮은 술집 주인 예전(김보경)도 마주한다. 이들은 술집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해묵은 오해를 풀며 이성에게 호감도 느낀다. 그러나 모두 딱히 ‘사건’이라 할 수 없는 소소한 것들뿐이다.

홍 감독 특유의 장치적 재미와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대사들도 이어졌다. 옛 애인의 집에 2년 만에 방문해서는 염치 불구하고 “네가 아닌 사랑은 아름답지가 않아!”라며 속보이는 일회적인 감정을 쏟아 놓고,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따로 연습하는 노고를 거쳐 완성한 쇼팽의 녹턴 20번을 이따금씩 연주하며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한다. 같은 시기 ‘푸른 소금’을 개봉하는 이현승 감독은 ‘북촌방향’ 예고편을 본 후 “역시 뛰어난 예술가들은 유머감각이 있다”고 감상평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흑백 영화지만 컬러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첫 장면에서 성준이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에서는 컬러로 등장한다. 이것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데(사람이 꿈을 꿀 때 흑백으로 꾼다는 말이 있다) 성준이 선배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가 우연이거나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극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만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순환적 사건들이 이어지는데, 같은 장소에서 여러 번 술을 마시는 것이나 길에서 마주쳤던 사람들과의 반복되는 우연 등이 그것이다. 스토리 구성요소들 간의 관계가 생략되고 그리하여 영화는 에피소드적 느낌을 준다. 결국 영화 말미에는 성준의 일상에 카메라를 든 한 팬(고현정)이 끼어든다. 환상과 현실이 결합되는 시점이다.

‘북촌 방향’은 홍상수 감독의 열 번째 작품 ‘하하하’를 통해 새로운 페르소나로 등극한 유준상이 다시 타이틀 롤을 맡았고 김상중과 송선미, 김보경이 출연했으며 전작인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했던 고현정이 우정 출연했다. 또한 홍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삼류 소설가인 주연배우로 출연했던 김의성도 17년 만에 출연했다.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리얼리즘을 위해 과감히 노메이크업으로 등장한다.

‘북촌 방향’은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신디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한국영화 개막작으로 선정돼 눈길을 끌었고, 국내에 앞서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서 먼저 공개돼 국제 영화계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오는 8일 개봉하며 19세 이상 관람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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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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