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issue] 한예슬 사건이 남긴 것…드라마 졸속 시스템 ‘후폭풍 예고’

[Ki-Z issue] 한예슬 사건이 남긴 것…드라마 졸속 시스템 ‘후폭풍 예고’

기사승인 2011-08-20 13:04:00

[쿠키 연예] KBS 월화드라마 ‘스파이 명월’ 촬영을 거부한 채 미국으로 도피했던 배우 한예슬이 이틀 만에 귀국해 지난 18일부터 촬영에 다시 합류했다. 이로써 일주일 간 떠들썩한 ‘촬영 거부’ 사건은 일단락됐다.

한예슬의 촬영 거부 사건은 그 누구도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던, 방송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사태였다. KBS 측은 “귀국한 한예슬이 방송사를 찾아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드라마가 시청자와의 약속인 만큼 배우 교체보다는 수용의 입장을 취했다”고 전했다. 한예슬은 여러 차례 드라마 촬영장에 지각을 하고 불참하는 등 제작진과의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급기야 지난 14일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15일 방송이 스페셜로 대체 방영된 바 있다.

한예슬은 ‘생방송 드라마’에 대한 일침과 졸속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귀국 직후 “연기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열악한지 알아주길 바랐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라고 말했다.

◆ 서서히 고개 드는 파급 효과=초반에는 촬영을 거부하고 방송 펑크 사태를 일으킨 한예슬의 무책임한 행동에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 하지만 서서히 한예슬이 주장한 ‘옳은 일’에 대한 관심과 동정론이 일면서 ‘사람 잡는’ 방송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는 분위기로 확산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한예슬이 촬영장에 복귀 한 후 사건이 일단락된 직후부터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17일 늦은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예슬 씨 찬반 논란은 있겠지만 저는 한예슬 씨 입장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힘내십시오”라며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있는 한 그 삶은 어떤 고난이 있어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배우 양동근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서 한예슬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여 화제다. 양동근은 17일 “한예슬은 순진하다. 그녀가 영악했다면 살인적인 스케줄로 피로가 누적, 링거 꽂고 병원에 입원했다면 이번 사태에서 마녀사냥은 안 당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주범은 비겁한 방송국이다. 국민과의, 시청자와의 약속 운운하는데 정말 토 나온다”는 영화계 종사자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동조했다.

이 영화계 종사자는 “한예슬을 두둔하거나 비호하는 게 아니다. 한국영화, 특히 드라마 다 근로기준법, 노동법위반 현행범들이다. 내가 미녀는 괴로워 찍을 때 미국 특수 분장 스태프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너 이렇게 현장진행하고 감옥안가니?’ 웃으면서 들을 말 아니다. 한예슬만 탓하는 거 비겁하다”라며 “우리 영화, 드라마, 매니지먼트 모든 사람들이 언제까지 밖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내실은 폭력적인 작업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나 정말 안타깝다. 우리 기본적으로 노동자다. 노동자도 권리가 있다. 내 개인의 인권을 시청자와의 약속 때문에 유린당해도 좋은가”라고 성토했다.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의 현실이 반영된 글이다.

배우 김여진은 ‘한예슬 사태’에 대해 칼럼을 기고했다. 김여진은 19일 한겨례신문 지면 ‘세상읽기’ 코너에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요’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김여진은 이 칼럼에서 한예슬 사태를 계기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실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을 통해 김여진은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방송사의 입장 발표와 스태프들의 성명을 봤을 때 보통의 미니시리즈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 꽤 긴 영화 한편 분량을 서너달씩 찍고 닷새만에 찍는 것이다. 주연 배우는 모든 신에 등장하니 5일 중 4~5일을 밤새며 찍을 것”이라며 “가장 힘든 건 감독님과 스태프들이다. 그야말로 초인적 버티기다. 꼭 누구 하나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곤 한다. 작가도 기계가 아닌 이상 시간에 쫓기고 매주 성적표처럼 나오는 시청률에 목이 조이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흔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것이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말했다면 같은 연기자로서 부끄러웠을 것이다”며 “우리 부디 얘기해보자. 한 사람을 비난하고 사과 받고 욕하는 것으로 끝내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괜찮은가?”라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김여진의 말처럼 이번 사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박봉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의 희생자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한 한예슬의 짧고도 임펙트 있는 발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달라지는 것 있을까?=한국방송연기자협회는 드라마 ‘스파이명월’ 한예슬 촬영거부 사태와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열악한 방송제작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19일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한예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방송사와 제작사 측의 견해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한예슬의 촬영 거부는 고질적인 방송 제작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제작환경 개선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살인적인 촬영 일정을 강요한 제작사와 방송사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며 “주연 배우가 하루 이틀 촬영 현장을 떠났다고 해서 곧바로 결방 사태가 벌어지는 현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방송 제작환경이 얼마나 열악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했다.

또한 한예슬의 촬영 거부는 생존을 위한 절규라면서 “우리나라의 근로 기준법에는 1일 8시간의 법정근로시간 외에 주당 1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초과 근로할 수 있다”며 “방송사들은 연기자들이 법정 근로시간의 보호를 받는 일반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촬영해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는 성명서 발표가 한예슬을 감싸주기 위한 것이 아닌 보이는 사실과 실체적 진실이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방송사, 제작사, 연기자로 이뤄지는 표준출연계약서 제정, 외주제작비 현실화를 위한 외주제작 실태 파악, 연기자와 스태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촬영 일정 조정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방송사 측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예슬을 두고 ‘개념 없는 배우’라고 비난하던 여론이 잦아들고 오히려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예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방송 펑크라는 사태를 맞은 ‘피해자’라 주장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게 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지난 16일 KBS 측은 한예슬이 미국으로 출국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예슬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를 규탄하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피력하며 법정 대응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날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제작환경이 열악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을 볼모로 삼아 말 안 되는 요구를 하고 그걸 넘어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쪽 대본과 살인적 스케줄을 거론하면서 (한예슬이)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하는 것 같아 보기 안 좋다”며 논점 이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예슬이 주장한 졸속 드라마 제작 환경은 세간에 화제가 됐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KBS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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