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박영석(이하 석): 오늘의 영화는 ‘푸른소금’이다. 영상미학의 대가 이현승 감독이 ‘시월애’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작품인 것 같다. 그런 만큼 더 기대가 컸다. 남자주인공이 송강호 씨인데, 송강호 씨 연기야 뭐 언제나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허허실실 유머러스하면서 과묵하고 터프한 모습 보여줘서 너무 멋졌다.
김고운(이하 운): 사실 20대 여성과의 로맨스를 그리는 40대의 중년남성의 모습이 그리 자연스러운 연출은 아니다. 하지만 송강호 씨가 중년의 매력을 정말 잘 살린 것 같다. 중년이라고 해서 복덕방 아저씨 같은 느낌이 아니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면도 있고 나이만큼 넉넉한 느낌도 느껴졌다. 많은 여성들이 이 영화보고 나와서 재미있는 배우 송강호가 아니라, 멋진 남자 송강호로 기억하는 것 같다.
석: 살도 많이 뺀 거 같던데 그래서인지 외모도 더 멋있어졌다. 신세경 씨는 요즘 인기가 대단한데, 이 영화에서 연기도 꽤 좋았다. 앞으로가 참 기대된다고 할까.
운: 신세경 씨는 캐스팅 단계부터 논란이 많지 않았나. 송강호씨의 상대역으로 연기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배우인가라는 논란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신세경씨 연기력이 많이 늘은 것 같다. 송강호씨와 잘 어우러져서 정말 소금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전체를 보아도 전혀 겉돌지 않더라.
운: ‘푸른소금’이 벌써 개봉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전문가평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평가도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은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영화 중에서 이렇게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경우는 오랜만인 것 같은데 재미있는 현상이다. 영석 씨는 어떻게 보셨나?
석: 평들을 살펴보니 영상이 좋아서 영화를 살렸다는 관객과 스토리가 개연성이 없어 재미없었다는 관객으로 나뉘는 것 같더라. 어쨌든 촬영이 좋고 빛의 활용을 워낙 잘해서 영상미가 매우 아름답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근래에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한국영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운: 나도 영상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이견이 없다. 한 편의 그림 같은 영상들이 내내 펼쳐지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로 손꼽는 염전씬도 아름다웠지만, 나는 특별히 갈대밭 장면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푸른소금’의 영상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느끼던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호우시절’의 김병서 촬영감독이 촬영했다더라. ‘시월애’를 연출했던 이현승 감독과의 만남. 그러니까 아름다운 영상을 찍어내던 연출자과 촬영감독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았다.
석: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게 빛의 활용이었다. ‘형사’에서 작업했던 신경만 조명감독이 조명을 맡았는데, 실내 공간에서의 푸른빛도 자연공간에서의 태양광도 너무 아름답게 담아냈다. 특히 갈대밭 장면에서는 노란색도 참 예쁘게 찍혔다.
운: 영화 제목이 ‘푸른’ 소금이잖나. 그래서인지 조명감독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다. 영석씨 말대로 푸른빛과 노란빛을 인물들의 상황이나 감정을 따라서 잘 사용했더라. 예를 들어 세빈과 두헌의 관계가 형성되는 부산에서는 주로 노란빛과 푸른빛을 섞어서 보다 따뜻한 느낌을 풍겼다면, 도심으로 들어서는 그레이톤과 푸른빛을 섞여서 인물들이 처한 고립된 상황을 차갑게 표현했다.
석: 가깝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다는 비정한 상황의 느낌을 잘 살렸다. 방금 고운 씨가 지적한 부분이 이 영화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같다. 그러니까 이런 아름다운 영상이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담아냈느냐 못 담아냈느냐의 차이가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거다.
운: 영화의 호불호의 지점에 대해서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색감을 통한 감정선은 충분히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색과 차가운 색의 대비는 시각적으로 바로 들어오는 거니까.
석: 내 생각에도 고운 씨 지적처럼 색감을 통한 감정 처리는 매우 잘 했다. 그런데 내가 지적했던 건, 영상이 너무 세련되다보니 오히려 인물의 감정과 밀착되지 못하고 서로 겉돌면서 부유한다는 평가가 많다는 것이다.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운: 물론 영화가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많이 나간 부분도 있다. 특히 세빈과 세빈의 족쇄 같은 친구 은정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최신가요 같은 음악이 나오면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은 아이돌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 들어 영화를 김새게 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아주 일부분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이유는 인물의 감정선이 다가오지 않는다기보다는 스토리의 개연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석: 스토리의 개연성? 일단 설정 자체가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난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운: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에 무리수는 없었다. 하지만 작은 부분들이 합쳐져서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트린다는 기분은 많이 받았다. 가령 강여사가 죽자 사자 윤두헌을 죽이려고 한다든가, 킬러K가 세빈을 엄마닭 처럼 싸고 돈다든가 하는 부분 말이다.
석: 강여사가 그러는 건 최고의 킬러집단이라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건데, 그건 별로 어색하진 않았다. 킬러K가 세빈을 감싸는 건,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미묘하게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설명된다. 세빈의 외로움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소녀이다 보니 어느 정도 동정심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두헌이 세빈에게 느끼는 감정이랑도 어느 정도 유사한 것 같다. 이런 드러날 듯 말 듯 한 미묘한 감정이 난 오히려 더 좋았다.
운: 미묘한 감정을 좋아하는 건 개인취향이긴 한데, 대부분의 관객이 그런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관객들이 이점에서 실망하는 것을 보면 그게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주연급 조연배우들 간의 인물관계 설정도 탄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없다고 할까.
석: 내 생각에는 영화가 두헌의 복수극으로 흘러가지 않아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세빈을 지키기 위해 존경하던 형님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는 건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근데 난 이 선택이 괜찮았다. 이로 인해서 영화가 누아르 장르보다는 멜로처럼 흘러가는 게 좋았다. 다만 40대 남자와 20대 여자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뭐한 멜로라인이다 보니 격정적 사랑에 비해서는 대중성이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운: 난 40대 남성과 20대 여성간의 사랑이 격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석: 아 나도 그걸 바란다는 건 아니고 설정 자체가 그런 걸 바라기엔 무리라는 거다.
운: 격정적이었으면 좀 울렁울렁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푸른소금’을 보면서 이 영화가 정말 흔치않은, 제대로 된 액션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토리 진행이나 편집속도가 정말 감칠맛이 났는데 영석 씨는 어떠셨나?
석: 일반적인 액션영화의 속도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 많이 느린 편이고 릴렉스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지루하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리듬이 시적인 영상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신선했다.
운: 마치 육상선수가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느낌이었다. 속도가 점진적으로 붙어서 나중에는 막판 스퍼트를 내는 느낌이랄까. ‘푸른소금’에서 자동차 액션씬이 빛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는 최근 흥행에 성공했었던 ‘최종병기 활’ 보다 ‘푸른소금’처럼 가변적인 속도를 가진 영화가 더 좋다. 이제 너무 치닫기만 하는 영화는 지겨운 면이 있다.
석: 갈대밭 장면에서 두헌이 자기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차에 총을 발사할 때는 정말 짜릿했다. 완급조절이 좋으니 이런 순간이 더 부각된다. 고운 씨는 이 영화를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 할 건가?
운: 완급조절을 할 줄 아는 액션영화계의 새로운 조류.
석: 소금이 물에 녹듯 아름다운 영상에 감정이 스르르 스며드는 영화.
◇ ‘네영화 내영화’는 쿠키TV 프로그램 ‘연예브런치’내 영화 소개 코너로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에디터들이 진행한다. ‘푸른소금’은 9월 24일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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