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이글이 100번 리트윗되면 서울 명동 한 복판에서 걸스데이 춤을 추겠습니다.’
지난 22일 새벽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www.twitter.com)에서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gsd*****)가 100회 리트윗에 성공하면 다음달 8일 서울 명동 한 복판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 걸스데이의 춤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의 글은 순식간에 퍼날러 졌다.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리트윗에 동참했다. 한 명이 두 명으로, 두 명이 네 명으로, 네 명이 열여섯 명으로 늘었다. 24일 현재 트위터에서 그의 글은 100건 가까이 검색되고 있다. 그가 열화와 같은 성원에 춤으로 화답할 순간도 머지않은 듯하다.
최근 인터넷 기사 및 게시판의 댓글란과 소셜 네트워크, 블로그 등에서는 이처럼 엉뚱한 약속을 내걸고 공감을 요구하는 글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이라는 뜻의 신조어 ‘베플'(베스트 리플라이·Best Reply의 줄임말)을 이용해 플래시몹(Flash Mob)을 시도하는 것으로, 네티즌들은 이를 ‘베플놀이’라고 부른다.
‘공감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베플놀이는 2009년 말부터 유행했다. KBS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프로그램 내 코너로 방영되며 대중에게 소개됐고 이제는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당초 포털 뉴스 사이트의 댓글란에서 한 줄의 글로 다른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는 수준이었던 베플놀이는 이제 방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커뮤니티 게시판과 소셜 네트워크, 블로그 등의 일반 게시글을 통해서도 베플놀이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베플놀이 주도자의 대담함이다. 주도자가 파격적 약속만 한다면 네티즌들은 어디든 찾아가 호응해준다. 주도자가 망신을 무릅쓸수록 반응도 뜨거워진다. 약속을 지켜도 보상은 없다. 그저 모두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약속을 어기면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주도자가 ‘인터넷 신상털기’에 희생돼 소셜 네트워크와 블로그를 폐쇄하거나 왕성하게 활동해온 커뮤니티에서 떠나는 경우도 발생한다. 베플놀이 참여자 대부분이 인맥 쌓기의 주요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하는 10대에서 20대 초반 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이다.
1년 넘게 약속 미룬 대학생 결국…
24일 오후 속옷차림으로 서울 여의도공원에 나타난 대학생 A(20·사진)군도 베플놀이의 희생자다.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의 한 지역 게시판에서 활동해온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10년 1월 ‘이글에 1000건의 댓글이 달리면 속옷만 입고 여의도공원에서 뛰어다니겠다’고 적었다.
여느 베플놀이가 그렇듯 그의 약속에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하루 평균 10건의 글도 올라오지 않는 한적한 지역 게시판에서 댓글 1000건 도전에 성공할 리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활동 인원이 많은 다른 게시판 이용자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1000건 넘는 댓글이 그의 글에 달렸다.
A군은 당황했다. 약속 이행을 미루며 사태를 무마하려했지만 실생활에서 이용자들과 자주 마주치는 지역 게시판의 특성상 “언제 뛸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했다. 약속을 어기고 정든 커뮤니티를 떠나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쟁이로 기억되기 싫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째 시달린 그는 군 입대를 이틀 앞둔 이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망신을 무릅쓰고 여의도공원 한 복판에서 옷을 벗었다.
아쉽게도 그의 도전은 끝을 맺지 못했다. 지역 게시판 회원과 구경꾼 등 그에게 몰려든 십수 명의 사람들 중 한 시민이 갑작스러운 노출에 놀라 불호령을 떨어뜨린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까지 나오자 A군은 벗었던 옷을 다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생애 최대 수모를 겪었지만 약속을 이행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A군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는 “앞으로 인터넷 공간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말하지 않겠다”고 짧게 말한 뒤 발걸음을 재촉해 공원에서 떠났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