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이번에는 공연이 열리는 극장 이야기를 몇 차례 해볼까 한다. 공연예술경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들자면 공연예술단체, 공연예술가, 공연기획사, 극장 등 많지만 이 중에서도 ‘꽃’은 극장경영이라고 필자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물론 서양에서는 극단, 오페라단, 무용단 같은 예술단체가 노른자이고 대개 예술단체가 자기네 극장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겠지만, 우리는 그 반대가 더 많거나 아예 예술단체 없이 극장만을 따로 운영하는 곳이 더더욱 많으니 그렇게 말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왜 꽃인가. 모든 공연예술은 극장에서 만들어지고 극장에서 공연되며 극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면 모든 공연은 극장으로 통한다고 할까.
‘꽃 중의 꽃’은 공공극장이다. 객석규모나 인력의 수, 운영예산에서 민간극장을 압도하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상업적 성격이 강한 민간극장보다도 예술성이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세심히 신경을 써야 하고, 교육수준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문턱을 낮춰 저렴한 비용으로 공연을 즐기도록 배려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자원의 적절한 사용으로 경영의 효율성도 높여야 하니, 그만큼 고도의 예술적 전문성과 경영성이 더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 지방의 대형 문화예술회관 등이 다 그런 조건이 필요한 공공극장들이다.
그런 공공극장의 운영책임자는 물론 오랫동안 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들이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경영성과를 높인다는 미명아래 기업에서 성공했다는 CEO들이 임명되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예술성이나 공공성보다 경영성과에 집착하다 도중하차하고 만 사례가 더 많다. 간혹 정치권을 등에 업고 선거에 기여한 비문화적인 ‘꾼’들이 고수들을 제치고 그 자리를 점령해버리는 일도 자주 있으나(지금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누구 하나 운영을 제대로 했다는 사례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운영을 제대로 못하는 책임자야 당장 하차시키는 게 당연하지만 잘한 사람도 임기(대개 3년이다)를 채우면 더 이상 계속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경영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고수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부장관이 바뀌자마자 과거 정부가 임명한 문화기관의 수장들에게 나가라고 해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재판에서 지는 바람에 ‘한 지붕 두 수장’이라는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필자는 마침 연구를 위해 영국의 국립극장을 방문하고 있다가 인터넷으로 그 소식을 접했다. 영국의 국립극장은 설립이후 45년 동안 운영책임자인 예술감독이 다섯 번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참이었다(그러니까 한사람이 평균 9년을 재직한 셈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아름다운 사례를 남기는 ‘문화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말이면 당시 임명되었던 여러 공공극장 운영책임자들의 임기가 끝난다. 그 중에는 전문가들의 운영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이들도 있다. 필자는 이 고수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극장을 더 좋은 모습으로 계속 바꿔나갈 수 있을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극장을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필자만이 아니라 공공극장을 이용하는 국민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용관(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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