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남북을 하나로 묶고 다른 종교인들을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화해자로서 '스피릿 비트윈'(spirit between)의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가 설립 120주년을 맞았다. 서울주교좌교회는 대한성공회
역사와 함께 해온 대한성공회의 상징이자 어머니 같은 교회다.
대한성공회 의장 김근상 주교는 "개인적으로 외할아버지(이원창 신부)가 서울주교좌교회에 4차례에 걸쳐 사제로 시무했고, 아버지(김태순 신부)도 1959-64년까지 사제로 일했다"며 "저 또한 1994~2000년 이곳에서 사제로 시무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주교좌교회 옆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 주교는 서울주교좌교회의 역사는 대한성공회의 역사나 마찬가지라면서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이른바 '선교사 시대'였던 1890년부터 1964년까지, 첫 한국인 주교(이천환)가 탄생한 1965년부터 영국 성공회로부터 독립한 1992년까지, 1992년부터 지금까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사 시대에는 서양 선교사의 눈으로 한국 교회를 바라봤고, 1965년이 되어서야 한국인 주교가 탄생하면서 비로소 한국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한국 교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면서 "1992년 법률적으로 영국 성공회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국가 교회로 인정받게 됐다"고 소개했다.
김 주교는 "120년 동안 선배 성직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특히 성공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일제강점기에 영일(英日)동맹으로 인해 처음에는 대접받다가 (영일동맹이 깨진 뒤에는) 일본 사람들로부터 모든 성직자가 추방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성공회 교회가) 북쪽에 51곳, 남쪽에 50곳이 있었는데 한국 신부가 (외국) 선교사 신부보다 숫자가 적어서 신부 한 명이 교회 10곳을 관리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회를 꾸려나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김 주교는 또 "1905년부터 1910년 사이에 미국의 장로교, 감리교에서 매우 많은 선교사를 (한국에) 보냈는데 똑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 경쟁이 심해서 황해도 이북은 성공회가, 서울 수도권은 장로교가, 경기도는 감리교가 선교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기든 지키든 관계없이 성공회는 50년이 넘도록, 1963년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고 소개했다.
그 약속 때문에 1963년이 되어서야 서울 시내에 두번째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성공회 교회는 대부분 (북한) 평양이나 충청북도 진천 주변에 있습니다. 감리교, 장로교가 없는 곳, 산꼭대기 등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에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김 주교는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이천환 주교는 성공회를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게 토착화했으며 두 번째 한국인 주교인 김성수 주교는 (사회봉사기구인) '나눔의 집' 운동 등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데 힘썼다"고 말했다.
특히 김성수 주교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고 갈리리 중심으로 활동했는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도시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면 잘사는 동네가 아니라 못사는 뚝방촌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시작한 것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나눔의 집' 운동입니다. 지금 나눔의 집은 전국에 20곳이 넘습니다."
김 주교는 대한성공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스피릿 비트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성공회가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 있다고 한다면 양쪽을 하나로 모으는 '비트윈'(between)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적 세계를 아우르는 '스피릿 비트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한국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남북을 하나로 묶고 다른 종교인들을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동 3번지는 서울 시내 복판이지만 대한민국, 전 세계의 복판일 수 있습니다. 120년 된 서울주교좌교회가 모두가 다 융합되고 녹아내리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해 초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성공회 종교간 대화협의회'(NIFCON) 공동의장에 추대된 김 주교는 다른 종교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에 선교사로 나가 있는 한국 사람(미국 국적자 포함)이 10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슬람교도들에게 가서 '하느님을 안 믿어서 쓰나미가 났다'와 같은 얘기를 하는 선교사가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천국, 너희는 지옥' 등 이분법적 사고는 세계 평화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지원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김 주교는 한국 교회가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6·25 전쟁 당시 남으로 내려온 북한 개신교 신자들 덕분이라면서 "저 사람들(북한 사람들)에게 그냥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갚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방북단 일원으로 북한을 다녀온 김 주교는 "2008년 방북 이후 3년 만에 북한에 갔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좀 밝아진 것 같고, 평양 시내는 사는 게 좀 나아진 것 같았다"면서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평양 시내는 온통 공사판이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