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이슈] 풍자·유머에도 ‘발끈?’…대한민국 개그맨의 애환

[Ki-Z 이슈] 풍자·유머에도 ‘발끈?’…대한민국 개그맨의 애환

기사승인 2011-11-19 13:07:00

[쿠키 연예]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 “개그보다 더 웃기고 재미있네”

웃음만을 위한 웃음은 때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되기 마련이다. 독자적이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는 흥미보다는 식상함을 안겨줄 뿐이다. 때문에 기본적인 개그 소재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누구나 느끼고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 혹은 현 세태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데에서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현실에는 다양한 벽이 존재한다. 유난히 개그맨들은 ‘대한민국은 마음껏 방송할 수 없는 나라’라고 하소연이다.
웃어 넘길 수 있는 문제에도 명예를 운운하며 핏대를 세우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웃음을 전달하려고 개그맨들은 이러한 현실에 부딪힌다. 최근 이러한 예를 적절히 알려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최효종 고소 사건이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지난 17일 KBS ‘개그콘서트’의 화제의 코너 ‘사마귀 유치원’의 최효종을 국회의원에 대한 집단 모욕죄로 서울남부지검에 형사고소했다. 최효종은 해당 코너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법 등을 풍자해 큰 웃음을 줬으나 강용석 의원은 이 개그가 국회의원을 모욕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효종은 당시 방송에서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된다.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된다.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된다. 공약을 이야기할 때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 역을 개통하면 된다. 현실이 어려우면 말로만 하면 된다.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지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의원에 고소에 각계 인사들의 쓴소리가 불거졌다. 평론가 진중권은 17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강용석, 최효종 고소? 누가 개그맨인지 모르겠네. 최효종 씨, 맞고소 하세요. 영업방해로”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틀린 말 하나도 없다.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공천 받아 여당 텃밭에서 출마하면 되는데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 줄줄이 맞는 말”이라며 최 씨를 옹호했고, SBS 정성근 앵커 또한 클로징멘트에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입니다. 개그를 다큐로 받은 겁니다. 아니면 너무 딱 맞는 말을 해서 뜨끔했던 겁니다”라며 “개그맨 최효종씨를 모욕죄로 고소한 강용석 의원이 그렇습니다. 뭐라 말하긴 애매하지만 최효종씨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법 조문 해석보다는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걸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뼈있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 또한 ‘아나운서한테 뺨맞고 개그맨에게 화풀이 한다’ ‘맞고소 하라’ ‘그 어떤 개그보다 더 웃기고 재미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나운서 모욕죄로 1,2심 모두 유죄판결을 받은 강 의원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최효종을 모욕죄로 고소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강 의원은 지난 7월 대학생 및 아나운서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한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돼 1, 2심에서 각각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개그맨 노정렬은 “강용석 의원, 걍 용서가 안 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강용석 의원의 고소는 다른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며 “풍자의 세기가 세서 고소했다기보다는 자신이 잘못하면 아나운서에 대한 집단 모욕죄로 금뱃지를 뗄 위험에 처해 있으니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그런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정렬은 지난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 물의를 빚은 조전혁 의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최효종과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노정렬은 “별명이 초저녁 애저녁이라 한다. 애저녁에 글러먹었기 때문”, “조 의원이 뜨긴 떴다. 얼굴이 누렇게 떴다”, “명예훼손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훼손될 명예가 없는 개나 짐승, 소는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고 이에 조 의원은 노정렬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노정렬은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 받았다가 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소송까지 이어지진 않지만 그 외의 압력도 존재한다. 한 개그맨은 “개그의 소재일 뿐인데 꼭 관련 협회에서 연락이 와서 항의를 한다”라며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콕 집어 설명을 하면 이해가 될 텐데, 늘 명예를 운운하며 무조건 빼달라 혹은 정정하라고 한다.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이념과 사고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개그맨들이 겪는 수난은 알려진 것보다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최효종의 고소 사건은 ‘보이지 않는 검열’이 존재하는 시대에 활동하는 개그맨들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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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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