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한해의 4분의 1이 지나는 시점인 3월 말, 영화계의 3개월을 돌아보면 한마디로 ‘한국영화 전성시대’다.
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댄싱퀸’과 ‘부러진 화살’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견주더니, 뒤를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하울링’ ‘러브픽션’ ‘화차’ 등 한국영화가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지난 22일에 개봉한 ‘건축학개론’ 역시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한국영화 흥행 돌풍을 이어갈 것으로 보여 전망이 밝다.
흔히들 2~3월 극장가를 비수기라고 한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한국영화보다는 아카데미 후보작 등 외화를 많이 만날 수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영화들이 저력을 발휘하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댄싱퀸’과 ‘범죄와의 전쟁’은 4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부러진 화살’은 34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러브픽션’은 23일 현재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168만 관객을 넘어섰고 ‘화차’ 역시 179만 관객을 돌파하며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연스레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지난해 2월 62.9%에서 올해 2월 75.9%로 치솟으며 강세를 보였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작품들의 대작이 아닌 중소규모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순제작비 5억 원에 총 제작비 15억 원이 든 저예산 영화임에도 346만 관객을 동원하며 250억 원의 수익을 거둬냈다. ‘댄싱퀸’은 총 제작비 58억 원이 투입됐으며 개봉 10일 만에 손익 분기점인 180만 관객을 넘었다. 37억 원이 투자된 ‘러브픽션’은 개봉 9일 만에, 36억 원이 든 ‘화차’는 개봉 8일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어서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들의 성과는 지난해 ‘고지전’ ‘7광구’ ‘마이웨이’ 등 100억 원이 훌쩍 넘는 거대자본을 투입한 영화들이 잇따라 쓴맛을 보며 영화계가 급속히 위축된 상황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중소규모 영화가 선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지난해의 경우 10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완득이’ ‘도가니’ 등 중소규모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이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관객들이 무조건 돈이 많이 든 영화라고 찾는 시대는 지났다. 영화의 작품성과 재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의 규모보다는 작품이 좋아야 흥행에 성공한다”며 관객의 안목이 향상됐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중소영화의 흥행이 계속 이어질지도 미지수인 상황에서, 중소영화에만 시선을 돌릴 수는 없다. 영화 제작사 문와쳐의 윤창업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중소규모의 영화들은 제 몫을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체기를 걷고 있는 현 영화산업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공이 필요하다. 한국영화 산업의 성장 측면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가지는 실질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는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개봉하는 ‘타워’ ‘도둑들’ ‘비상: 태양 가까이’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가 영화산업 전반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전성시대’는 비단 국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감독들이 활발하게 해외시장 진출을 하고 있는 것. 박찬욱(스토커‧미국), 김지운(라스트 스탠드‧미국), 허진호(위험한 관계‧중국), 곽재용 감독(철피아노‧중국) 등이 할리우드와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
한국감독들의 활발한 해외시장 진출은 한국영화 발전의 또다른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흥행에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갖고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이 대내외적으로 한국영화가 흥행하고, 그 세(勢)가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확인한 1/4분기였지만, 한국영화가 흔들릴만한 과제들 역시 현실적으로 눈앞에 놓였다. 바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로 인한 독과점 문제와 음악저작권협회와 영화계 간의 저작권료 갈등 해결 등이다.
영화 배급사 NEW의 영화사업부 장경익 이사는 “여름방학 같은 성수기 시장에서, 매주 자사영화를 개봉시키며 타 배급사의 영화는 개봉조차 힘들게 만드는 구조하에서는 경쟁을 통한 발전을 도모하기 힘들다. 자사영화에 대한 일정 정도 이상의 상영제한 규정이라도 만들어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이 변화하는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며 장기적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대안이다. 극장을 가진 대기업의 영화가 실패하면 성수기 영화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에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와 영화계 간의 ‘저작권료 갈등’ 역시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
이들의 갈등은 음악 저작관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 음악이 쓰인 영화의 상영관 측도 음악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소송이 제기되며 시작됐다. 영화계는 강력히 반발하며 “음악이 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극단적인 입장도 내세웠다.
음저협은 그동안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행사하지 않았던 권리를 이제야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영화계는 영화 제작 때 사용료가 이미 지불 됐는데도 상영관에서 사용료를 내는 것은 이중부담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