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직딩들의 직급별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한 취업 포털 사이트의 광고가 화제다. 말단 사원에서부터 사장까지, 사무실에서 방출해 버리고 싶은 그들의 치명적인 결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직장인들의 폭풍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런데 직딩들의 애환은 허리병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도일 고도일병원 원장은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허리병을 들여다보면 직급별로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척추질환으로 진료실의 문을 두드리는 직장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직딩’의 직급별 허리병을 재구성했다.
◇신입사원의 월요 허리병은 꾀병?= 월요일 아침, 신입사원이 병원 간다며 전화로 오전 반차를 냈다. 주말 잘 쉬고 나서 월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회사를 빠지다니, 그것도 부장부터 말단까지 모두 참석하는 주간회의도 빼 먹은 채 말이다. 오후에 쭈뼛쭈뼛 출근한 신입,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죄송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뻣뻣한 허리로 뒷머리만 긁적댄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주말. 신입은 그동안 취업준비로 소홀했던 여자 친구를 위해 놀이공원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 여친이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하자 호기롭게 업히라고 했다. 뿌리치는 여친 앞에 아예 쪼그리고 앉아 등을 들이댔다. 그게 문제였다. 여친을 업고 일어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무거운 것을 등에 업고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날 때는 그 무게가 고스란히 허리에 실린다. 여친의 가방까지 둘러메고 하루 종일 걸은 탓에 이미 허리가 지쳐 있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무리한 충격이 가해져 허리에 탈이 난 것이다.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본 결과 다행히 디스크는 손상되지 않았고 허리 근육이 심하게 경직된 탓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몸짱 과장이 디스크가 웬 말?= 항상 몸에 꼭 맞는 셔츠를 입으며 몸매를 과시하던 몸짱 과장이 허리가 아프다며 절절 맸다. ‘허리’는 남자의 자존심이라며 은근히 옆 사람 기죽이던 과장인지라 다들 고소해하면서도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과장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됐다’며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실은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다 허리를 다쳤다. ‘자존심 경쟁’이 원인이다. 그날도 데드리프트(바벨을 바닥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운동)를 하는데 옆에 있는 남성이 보란 듯이 바벨 플레이트를 하나씩 하나씩 더 끼우며 요란하게 운동을 했다. 몸짱 과장은 오기가 나 무리하게 바벨 양쪽에 2㎏씩이나 늘렸다. 그런데 바벨을 드는 순간, 허리에 불덩이가 타는 느낌이 왔다. 상처 난 자존심에 허리통증까지, 몸과 마음이 다 아팠다. 며칠 운동을 쉬었지만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 뒤늦게 병원에 갔더니 급성 디스크 파열이라고 했다. 의사는 일단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하며 지켜보자고 했는데, 호전되지 않으면 다른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비수술적인 치료법을 쓸 거라고 했는데, 어쨌든 자존심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구겨졌다. 헬스클럽을 바꿀까 생각중이다.
◇주말 골퍼, 걷기로 돌아선 사연은?= 금요일 오후, 거래처 사람 만난다며 외근 나갔던 부장이 퇴근 무렵 회사로 들어왔는데 자세가 영 어색했다. 반나절 만에 사람이 달라졌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는 데도 엉거주춤이다. 문제는 골프였다. 주말 골퍼인 부장은 주말 골프약속을 앞두고 근무 중에 몰래 실내연습장을 찾았다. 시간이 없어 스트레칭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드라이버만 휘둘렀다. 처음엔 그냥 허리가 뻐근하던 것이 다음날엔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골프장 대신 병원으로 갔다.
골프는 한쪽으로만 근육을 반복적으로 쓰는 운동으로 부상의 위험이 높다. 골프 부상 중 25~50%가 허리에 집중된다. 스윙을 하는 동안 척추는 체중의 최대 8배의 압박을 받는데, 3~4번 요추에 집중된다. 부장은 겨울 내내 운동은 하지 않고 술과 야식을 즐기다 보니 허리 근육은 약해진 대신 뱃살만 늘었다. 그 상태에서 준비운동도 없이 연습을 한 결과 허리에 무리가 간 것이다. 게다가 골다공증도 심해 척추 압박골절의 위험도 높았다. 술과 야식을 끊고 골프 대신 걷기 운동을 할 것을 처방받았다.
◇자세 낮추는 겸손한 우리 사장님, 알고 보니 이것이 문제?= 사내에서만큼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사장이 직원들을 대할 때면 항상 직원보다 더 허리를 굽혀 ‘겸손한 사장님’으로 입소문 났다. 그러나 ‘숙여야 편한’ 사장에게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사장의 허리는 굽힐수록 편해진다. 50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어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생겼다. 오래 걷고 나면 엉덩이도 찌릿찌릿했는데, 허리를 굽히면 아픈 게 덜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적으로 허리가 크게 숙여졌다. 병원에서는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척추관이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리는 척추관협착증이라고 했다. 50대 이후 환자가 급증한다고 하더니 바로 딱 그 경우였다. 허리에 ‘칼’ 대는 것이 무서워 병원을 피했는데, 의사 친구가 수술안하고도 치료할 수 있다고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이젠 친구 말을 들을 때가 된 거 같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
도움말·고도일 고도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