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Style] “그 ‘레자’ 옷 좀 벗으면 안 돼?”…아이돌 무대의상의 딜레마

[Ki-Z Style] “그 ‘레자’ 옷 좀 벗으면 안 돼?”…아이돌 무대의상의 딜레마

기사승인 2012-05-12 12:59:01

[쿠키 연예] 90년대 후반의 가요 무대를 기억한다. 올림픽공원 주경기장을 희고 노란 물결로 물들였던 그 때의 ‘오빠’들은 참 빛이 났다. 멋진 외모와 춤도 그러했지만 의상도 빛이 났다. 다름 아닌 반짝거리는 에나멜, 일명 ‘레자’로 만들었던 무대의상들은 아이돌 그룹뿐 아니라 그 시대 이른바 잘 나가는 가수들의 시그니처 아이콘 같은 것이었다. 패션 브랜드로 치면 ‘샤넬백’이나 ‘루비똥’ 같은 것들.
그러나 1세대 아이돌인 HOT, 젝스키스를 지나 2세대인 동방신기까지 내려온 비슷한 무대의상은 곧 지긋지긋해졌다. 한결같이 저렴한 재질과 완성도가 높지 않은 의상은 ‘오빠를 모시는’ 팬들에게는 꽤 창피한, 오빠들의 오점 같은 것이 되어갔다. 3세대 아이돌인 소녀시대와 티아라, 2PM 등이 활동을 하며 이러한 양상의 무대의상은 다시 꽃 피기 시작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90년대 활동했던 가수들이 제작자로 돌아서며 그 때의 그 음악과 퍼포먼스, 패션과 스타일을 재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도 ‘비닐 바지’ 패션으로 회자되는 박진영과 이효리, 조성모 등의 제작자였던 김광수 대표는 지금도 소속 가수들의 의상 콘셉트와 제작에 직접 손을 댄다고 알려져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재미있게도 앞에서 꼽은 티아라와 2PM은 팬들의 ‘창피’를 극복하고 제작의상으로 꽤 많은 효과를 봤다. 티아라의 경우 ‘너 때문에 미쳐’의 활동 당시 이전까지 네임벨류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곡의 중독성과 함께 반짝이는 제작의상이 불러온 시너지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또한 2PM의 경우, 재미있게도 상당수의 옷을 찢거나 잡아 뜯는 퍼포먼스 덕분에 협찬 받아야 하는 기성복보다 상대적으로 튼튼한 옷을 필요로 해 제작의상에 안착하게 됐는데 이는 곧 ‘어게인&어게인’의 육중하고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사실 그 의상들은 패셔너블하기는커녕 테러리즘에 가까운 스타일과 사춘기 소녀의 극에 달한 만화적 상상력을 자랑하기 바빴지만 단 하나, 그룹 멤버들의 멋진 바디라인만은 정말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끝내줬다’.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유닛 오렌지캬라멜에서 그 효과는 극에 달했다. 이전의 섹시하고 강한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기획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일본 아이돌 캬리퍄뮤퍄뮤를 연상시키는 유치한 의상과 율동에 가까운 댄스는 반전을 가져왔다. 이는 노래만 좋으면 된다는 예전과는 달리, 퍼포먼스 또한 중시해 그들의 무대를 예의주시하게 된 대중의 경향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렌지캬라멜은 대한민국 그룹 유닛이 누릴 수 있는 인기의 끝을 봤다. 연속적으로 낸 싱글 음원 4개가 시장에서 대히트했으며, 온갖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액세서리들이 오렌지 캬라멜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쇼핑몰에 속속 업데이트돼 무섭게 팔려나갔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이상형이 됐으며 원래 소속 그룹보다 더 유명해지는 아이러니함도 생겼다. ‘걸리시’라는 명목 하에 유치함에 경련이 올 정도인 온갖 레이스 범벅의 의상들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대의상이라는 것은 원래 도저히 패셔너블할 수 없는 부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스타일리시함보다는 그룹 전체의 통일감과 독특함을 중시하며 거기에 더해 팬들의 유아적인 감성에 어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유치해지는 아이돌 무대의상의 결과는 참담했다.

오렌지캬라멜 이후 더 대단한 옷은 사실 나올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걸스데이다. 리비도를 자극하는 제작의상이 결합된 ‘반짝반짝’으로 인지도를 넓히고 재미를 본 걸스데이는 ‘OMG’로 재차 그룹의 부흥을 노렸으나 섹시하지도, 귀엽지도 않은 에나멜 의상의 ‘폭격’에 남은 것은 민아의 과한 표정연기 뿐이다.

아이돌 그룹들은 더 스타일리시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장원리에 기댄 자명한 사실이다. 어차피 나오는 제품들이 크게 차별성이 없다면 대중들은 가장 예쁘고 스타일리시한 상품을 고른다. 계획성이 없는 상품은 실패한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퍼포먼스형 그룹이라고 해서 꼭 이미지가 강하거나 유치할 필요는 없다. 치열하다면 가장 치열했던 2008년의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은 샤이니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샤이니에는 그 당시 연예시장을 점령했던 ‘짐승남’도, ‘근육’도 없었지만 ‘샤이니 스타일’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네임벨류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줄리엣’에서 극대화된 그들만의 소년 페티시즘은 하나의 패션 키워드가 돼 이후 형성된 3세대 아이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재미있는 것은 기성복 같던 그들의 무대의상은 젊은 스타 디자이너 하상백이 제작한 의상이라는 것이다. 같은 무대의상이라도, 치밀한 계획성이 뒷받침되면 기성복을 넘어서 스타일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셈.

결국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콘셉트와 치밀한 스타일링이다. 예쁘고 멋지기로는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을 대중에게 스타로 각인시키는 데에는 패션이 필요하다. 어차피 모두 예쁜 얼굴, 멋진 얼굴, 좋은 음악이라면 이제는 패션으로 눈을 돌려줄 때도 됐다. 그러니까, 이제 그 ‘레자’ 옷 좀 벗으면 안 돼?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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