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 내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린 램지 감독)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성이라면 누구나 모성을 타고나는 것일까. 만약 내 아이들이 전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감독 린 램지)는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에바(틸다 스윈튼)의 모습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에바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자유로운 여행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남자 프랭클린(존C. 라일리)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케빈(이즈라 밀러)을 임신한다. 세계가 주 무대였던 그의 삶은 집과 아이로 축소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케빈은 에바의 삶을 근심과 불안으로 채운다.
케빈의 우는 소리를 공사장 소음으로 잠재우려 하는 에바. 이런식의 행동은 케빈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이는 악의 씨앗으로 자라난다. 복수라도 하듯 케빈은 지속적이고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를 괴롭히고, 청소년이 된 그는 급기야 학교를 찾아가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악마를 잉태한 죄’(?)라는 비난은 에바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혼자 짊어지기 힘든 상처를 안았지만 에바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케빈의 곁을 지킨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케빈에 대하여’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잔혹한 범죄를 그린 점에서 영화 ‘엘리펀트’와 비교될만하지만, 이 영화는 10대 청소년문제가 주가 아닌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물 간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숨통을 조여 오는 갈등구조로 섬뜩하게 표현해낸다.
영화의 원제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WE NEED TO TALK ABOUT KEVIN)다. 정작 영화에서는 케빈이 아닌 에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케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영화 ‘쥐잡이’(1999)로 화려한 데뷔를 한 린 램지는 9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영상, 음악, 편집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압권이다. 틸다 스윈튼 사랑할 수 없는 아들을 홀로 사랑해야 하는 에바로 완벽 분해 복잡한 심리표현과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텅 빈 눈빛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케빈 역의 이즈라 밀러 역시 서늘한 악마의 미소를 보이며 분노에 찬 캐릭터를 십분 소화해냈다.
영화는 ‘오렌지상’을 수상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상은 영화는 영어권 여성작가에게 수여하는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이다. 26일 개봉했으며 18세 이상관람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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