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어서 태어난 아이, 수술보 말려 종이박스에…

[단독] 죽어서 태어난 아이, 수술보 말려 종이박스에…

기사승인 2012-08-14 15:00:01


사산아 화장 ‘인격’ 상실

핏덩이 채로 종이상자에 입관

한 개의 화장로에서 한꺼번에 화장

[쿠키 사회] 지난 5월 박태선(가명) 씨는 아이를 가슴에 묻었다. 임신한 아내와 초음파검사를 확인하던 중 뱃속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임신 34주 2일째 되는 날이었다. 살아있는 아이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박 씨 부부는 급히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아 수술을 진행했다. 한 아기는 신생아실 인큐베이터로, 다른 한 아기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병원 장례식장 측은 사산아의 경우에도 엄마 뱃속에서 일정기간 이상 있었다면 일반 장례 및 화장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해당 절차는 대행이 가능하다며 화장 직전까지 이뤄지는 모든 일정을 장례식장에서 진행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살아서 태어난 아기를 지켜내야 하는 절박함에 화장절차를 장례식장에 일임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안치실 이용 비용은 물론이고 시신을 닦거나 덮는 수세포, 시신을 씻긴 후 천으로 다시 감싸는 염습, 관에 들어갈 초석, 한지 그리고 목관 값 등의 비용이 대행비에 포함됐다.



운명을 달리한 아기는 윤달을 맞아 화장장 예약마저 밀려 냉장 안치실에 들어간 지 8일 만에 가까스로 화장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기를 보내는 마지막 길엔 박 씨의 모친과 장모가 동행했다. 화장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쌍둥이 손녀의 얼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고자 관을 열었고, 양수와 피가 묻은 채 녹색 수술보에 말려 방치된 아기 시신을 보고 말았다. 당초 병원에서 약속했던 염습 및 입관절차는 지켜지지 않았다. 박 씨는 “장례를 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는 하나의 인격이라고 말하면서 실제 운영은 이처럼 쓰레기 갖다 버리는 것처럼 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해당 장례식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인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하에 있었다.
병원 관계자에게 박 씨의 사연을 꺼내놓자 장례식장 일을 병원과 연관지어 얘기하면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개 병원 이름을 보고 장례식장을 선택하지만 병원 측은 입장이 달랐다. 장례식장은 병원이 외주를 준 것 뿐이라며 발을 뺐다. 형식적 화장절차에 대해 장례식장 관계자는 “비용 청구 항목엔 염습비가 따로 있지만, 사실 사산아는 약품처리를 할 뿐 닦거나 씻기진 않는다”며 “수술보를 사용하는 것 역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장례식장에서 말하는 정식 절차는 한마디로 ‘그들만의 절차’였다.

취재진은 사산아 화장이 진행되는 화장장과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화장장, 화장시간을 앞두고 사산아 이송업체 승합차량이 도착했다. 업체 직원은 화장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천에 감싸진 사산아를 서둘러 종이박스에 넣어 화장장 담당자에게 인계했다. 화장장 관계자는 종이박스가 관이 될 수 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종이든, 나무든 그게 관이라고 명칭을 붙여버리면 관이 된다”며 “사산아 관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슈퍼마켓에서 봄직한, 과자 이름이 크게 써있는 과자박스에 무덤에서 거둔 시신의 개장유골이 담긴 채 화장로로 옮겨지기도 했다. 지방에 위치한 또 다른 화장장의 관계자는 “각 병원에서 모인 서너 개 사산아를 한 화장로에 넣고 한꺼번에 화장을 치르기도 한다”며 “어차피 사산아 유골은 부모가 직접 가져오지도 않고 화장을 보러 나오지도 않는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태아의 착상이 완료되는 임신 4개월 이후 사산아는 일반 시신과 같은 장례 및 화장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취재진이 알아본 실태는 참혹했다. 사산아에게 생명존중이란 자신의 것일 수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이 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산아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사산아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가 하면 적출물로 나가거나 활용가치에 의해 인육캡슐 등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며 “가족조차 사산아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마당에 사회적으로 이를 감시하고 지도할 체계를 갖추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100명이 임신하면 약 1명은 사산을 겪는다. 고령 임신이 늘면서 사산 건수는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산아 사후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다. 관련 연구 및 데이터 확보는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 교수는 “사산아라도 이후 과정 및 절차는 같아야 하는 게 윤리적으로 맞다”며 “그 사유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지 않고 예우를 갖춰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에 대해선 사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늘도 사산을 겪는 부모가 있고 사산아 화장은 이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산아들은 또 떠밀려 간다. 세상이 덮어버린 종이관 속의 진실이 아무리 참혹하다 해도 사회적 의지와 고민이 없다면 그저 관 속에 담겨 사라질 한줌 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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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성일 기자 ivemic@kukimedia.co.kr

이은선 기자
ivemic@kukimedia.co.kr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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