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조민수 “김기덕 감독과 배틀하는 기분으로 연기했죠”

[쿠키人터뷰] 조민수 “김기덕 감독과 배틀하는 기분으로 연기했죠”

기사승인 2012-10-01 11:54:00

[인터뷰] 영화 ‘피에타’의 조민수는 ‘흑발 마리아’로 불리며 국내는 물론 해외 관객들의 눈까지 한 번에 사로잡았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 가슴속에 무언가를 품은 듯한 그의 표정과 행동은 묘한 긴장감을 안기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에게 궁금증을 품게 한다.

‘피에타’는 제6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전해진 소식. 조민수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은 여우주연상 후보였지만,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이 다른 주요 부분의 상을 탈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

베니스영화제 수상 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조민수를 만났다. 황금사자상 축하와 더불어 여우주연상을 놓친 것이 아깝지 않았는지 묻자 “솔직히 많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으로 더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고 그 안에 있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곧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영화 관계자나 대중들에게 ‘나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는데 이렇게 좋은 성과를 얻게 돼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고 덧붙였다.

‘피에타’는 평생 고아로 살아온 악마로 대변되는 사채업자 강도(이정진)에게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사랑이란 것을 받아 본적도 준적도 없이 30년을 살아온 냉혈한 강도에게 ‘내가 널 버렸어’라고 말하며 등장하는 여자. 바로 조민수다. 강도를 버린 엄마 미선으로 등장하는 그지만 극 후반 숨겨진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다.

“감독님은 제게 엄마, 모성을 연기해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것 외에도 제 안에 다른 것을 그렸어요. 엄마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을 때 할 수 없는 행위들이 등장하는데 분명히 ‘여자’의 모습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느꼈죠. 어떻게 해서든 강도의 마음을 얻어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엄마는 안아줘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이 캐릭터를 표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이런 연기스타일은 김기덕 감독의 작업 환경에 꼭 맞는 ‘맞춤형’이었다. 김 감독은 여러 번 촬영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본인이 원하는 텍스트가 전달되면 그뿐, 배우의 세세한 연기를 굳이 이끌어 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점이 한편으로 배우에게는 더 큰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조민수가 김 감독이 원한 ‘모성’ 외에도 다른 여러 마음을 품으며 연기할 수 있던 이유다. 하지만 방향성을 잡는 데 있어서는 김 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촬영 전 충분히 대본을 봤고, 불편한 것들은 못 하겠다고 미리 말씀드렸어요. 제가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사전에 제거를 해야 했죠. 대사도 감독님의 글이 잘 이해 가지 않으면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의사를 충분히 밝혔어요. 이런 사전 조율과정을 단단히 하고 나니 슛이 들어가고는 일사천리로 연기할 수 있었죠.”

촬영에 들어가서는 마치 생방송인 듯 실수 없이 한 번에 감정을 폭발시켰다. 마치 김 감독과 ‘배틀’ 한다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김 감독은 2번 정도 촬영해서 안되면 바로 접어버리세요. 가끔은 배우를 소품으로 생각한다고 느껴질 정도죠. 시간을 줘야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들도 있는데 결코 기다려주는 법이 없어요. 때문에 제 것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기다려? 그럼 나도 슛 들어가면 바로 할께’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죠. ‘당신은 감독하고 난 배우 할께’라고 다짐하며 제 것을 챙기는 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이런 작업환경이 낯설기도 했지만 재밌기도 했어요.”

빠른 속도로 감정을 몰입하기 위해 촬영 전 하루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감정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잡다한 감정을 비워내고 오로지 제 역할만을 채워 넣었다. 그러나 촬영이 끝난 후에는 한 치의 잔상도 없이 훌훌 털어버렸다고.

“영화가 끝난 후 인물에 대한 잔상은 없었어요. 그냥 ‘행복한 촬영을 했구나’ 정도만 생각했죠. 제가 이 캐릭터에 젖어있었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작품이 끝나면 빨리 빠져나오는 편이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연기자들은 벌써 다 힘들어 죽었겠죠(웃음).”



‘피에타’의 수상 이후 조민수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20대였다면 기고만장했겠지만 살아보니 이번 수상은 추억을 제공해준 것밖에 없다”며 소탈하게 말했다.

“지금의 이 행복은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제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아요. 몇 개월 동안은 작품의 역할을 맡는 데 있어 제 또래 배우들보다 앞순위에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제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 일은 아니에요.”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크다. 본인 역시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지금까지도 늘 작품을 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이 시점에서 어떤 걸 해야 하는가를 가장 중요시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2년 만에 한 작품을 하기도 했는데,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작품을 고르고 연기할 거예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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