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려고 빌렸지, 버티면 될 줄 알고” 코로나 팬데믹과 고물가, 경기 부진 속에 끝까지 버티다 결국 폐업을 결정한 한 자영업자의 말이다. 그에게 남은 건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다. ‘재기’라는 희망은 사라졌고, 남은 건 당장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막막한 고민뿐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채무 탕감’ 공약을 내놓았다. 코로나 시기 정책자금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의 빚 일부를 덜어주자는 제안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땀 흘려 일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 국가의 방역 정책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이 분명 있다.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한 만큼, 국가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자영업자들의 부실이 그대로 방치될 경우,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다. 일부라도 빚을 덜어주는 것이 채무자의 상환 가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는 대출 회수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채무 탕감은 양날의 칼이다. 절박한 자영업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안긴다. 책임감 하나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던 집을 팔아가며 빚을 갚아온 이들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되는 구조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감내해 달라”는 말이 과연 그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채무 탕감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코로나 시기 자영업자들에게 지원된 대출 상당수는 국가 보증이 붙어 있다. 탕감이 현실화될 경우 결국 국민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다른 복지나 지원 예산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신용 질서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된다. “어차피 나중엔 탕감해주겠지”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금융의 근간인 신용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은 ‘책임 있는 신용’이라는 상식 위에서만 선순환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에 피해를 받은 자영업자들이 존재하고, 일정 부분 국가가 그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국민의 고통에 국가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다. 채무 탕감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정책의 디테일이 뒷받침돼야 한다. 소득·자산 수준, 상환 이력, 회생 의지 등 세밀한 기준을 토대로 엄격하게 선별해 지원을 집행해야 한다.
특히 채무 탕감의 본래 목적이 ‘재기’에 있는 만큼, 단순한 채무 경감으로 정책이 끝나서는 안 된다. 탕감 대상자들이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취업·재창업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이 정책이 단순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채무를 덜어주는 결정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채무 탕감의 무게와 책임은 결국 우리 모두가 나눠져야 할 몫이다. 이 공약이 진정 ‘재기’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정교한 설계와 냉정한 실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