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짜 발기약 밀수입량 세계 2위
‘해피 드럭’ 꿈꾸다 성불구·사망 초래
[쿠키 건강] 인터넷 쇼핑 후 입금만 하면 누구나 손쉽게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구입할 때 성인인증도 필요 없다. 구두나 옷 혹은 양주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은 후 반드시 약국에서 구입해야 하는 발기부전치료제의 불법유통 실태다. 약국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구입한 발기부전치료제는 100% 가짜라 해도 틀리지 않다.
지난해 밀수입 1138억 원…60만 정 한 달이면 동나
가짜 발기부전치료제가 국내에서 제조되는 경우는 드물다. 중국 등 외국에서 밀수입된 경우가 태반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39건(시가 353억 원), 2010년 28건(916억 원), 2011년 9건(1138억 원)의 적발 사례가 있었다. 단일 물품은 세관 검사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악용하거나 철근이나 대리석 속에 감춰 들여오는 등 수법이 주도면밀해지면서 적발 건수가 줄었음에도 밀수입 규모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법규 준수도가 높은 상장업체 직원을 매수해 정상 물품인양 들여오는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인천해양경찰서는 밀수입된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은닉 현장(인천시 부평구 소재 가정집)을 급습해 총 60여만 정, 시가 90억 원 상당의 약제를 압수한 바 있다. 시중에 유통되기 직전 현장 적발된 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현장에서는 가짜 약을 포장할 약통과 솜뭉치, 스티커 라벨 등도 함께 발견됐다. 유통을 주도한 국내 공급책 A씨와 중간 유통책 B씨는 약사법과 상표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경찰은 이미 밖으로 흘러나간 상당량의 가짜 약은 수도권 일대 성인용품점 등으로 유통돼 정품의 10분의 1 가격에 판매된 것으로 추정했다. 인천해양경찰서 정보과 외사계 허준환 경장은 “가짜 약 공급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전개된다”며 “복제의약품이 나왔지만 가짜 발기약의 국내 소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또 다른 경찰은 “당시 압수된 가짜 약 60만 정은 수도권과 충청권 일대에서 한 달이면 동이 나버리는 양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서울역·쇼핑몰 등에서 쉽게 구입 “모두 가짜”
컨테이너 선박, 보따리상 등을 통해 들어와 단속을 피한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는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취재진은 서울 종묘공원과 서울역, 남대문시장 일원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가짜 약을 구할 수 있었다. 30정 짜리 한 통을 15만 원에 파는 곳이 있었고, 1만 원에 6정 씩 주는 곳도 있었다. 한 정당 1만 원대인 정품에 비해 훨씬 저렴했고 진단 또는 처방, 복약지도 같은 절차는 당연히 없었다.
불법유통 상황은 온라인상에서 더 심각하다. 중국이나 일본 등에 서버를 두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쇼핑몰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팔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들은 하나 같이 약국판매를 대행하고 있다는 홍보문구를 내걸었다. 물론 근거 없는 얘기다.
취재진이 가짜 약을 구입한 A쇼핑몰 관계자는 “병원 쪽 제품보다 함유량이 2배가량 더 높은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면서 “우편물 겉면에 생활 잡화나 문구용품으로 표기해 발송하니 안심해도 좋다”고 말했다. 추석연휴 기간 할인행사를 진행한 B쇼핑몰의 관계자는 “수요가 많다 보니 주문 전화를 받는 사무실 외에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약을 대량으로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따로 마련돼 있음을 짐작케 했다.
“발기유도 성분 지나치게 함유…더욱 위험”
취재진이 약국이 아닌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입한 발기부전치료제 6개 제품은 사실상 정품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됐다. 알약의 모양에서부터 성분이나 함량이 표기된 포장용기, 주의사항 등을 담은 설명서까지 구색을 갖춰 놓았다. 하지만 모두 가짜였다. 영남대학교 임상약학대학원 김성철 교수는 “비아그라의 경우 겉포장에 정품을 식별할 수 있는 홀로그램이 있으며 내부용기의 공기가 들어가는 부분이 깨끗하고 조밀하다”고 설명했다.
발기부전치료제는 체내에서 발기를 방해하는 효소를 억제해 발기를 유도하는 작용을 하는데 가짜 발기부전치료제의 경우 주성분의 함량이 일정하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비뇨기과 손동완 교수는 “정품 발기부전치료제도 저혈압, 시력장애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더욱이 거의 모든 가짜 약은 발기를 유도하는 유효성분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있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성인용품점에서 파는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17개 제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14개 제품이 표기된 함량을 초과했으며, 이 가운데는 정품 권장용량의 3~6배에 달하는 과다함량 제품들도 포함됐다. 또 9개 제품에는 설명서와 다른 주성분이 들어 있기도 했다. 제조 환경 자체가 의약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 71.5% “가짜 약 위험성 모른다”
하지만 가짜 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남성과학회가 지난 3월부터 2개월 간 만 30세 이상 성인 남성 4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71.5%가 가짜 약의 위험성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고대구로병원 비뇨기과 문두건 교수는 “발기부전치료제는 전문치료약인 동시에 오남용 방지 약물이기 때문에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비뇨기과는 병의원 차원에서 처방과 더불어 투약도 가능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과 관련 학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가짜 약 근절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환자권리팀장은 “의료기관과 연계된 부작용 주의 자료 구축과 더불어 가짜 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피해사례 보고 시스템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 개선돼야…부작용 사례 조사도 필요
약한 처벌 수위도 불법유통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소매상이 가짜 약을 팔다가 적발됐을 경우 적게는 70만 원, 많게는 300만 원의 벌금만 물면 그만이다. 당국 차원의 부작용 사례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영남대학교 임상약학대학원 김성철 교수는 “영국 등에서는 정품 발기약으로 인해 급사한 경우도 많이 보고 되고 있지만 국내엔 이런 보고가 없다”며 “이는 사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조사가 안 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짜 발기약 밀수입량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 한국. 업계가 추산하고 있는 국내 가짜 약의 시장 규모는 1200억 원대다. 1000억 원대인 정품 시장보다 약 200억 원 가량 큰 규모다. 이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막아서지 않으면 안 될 심각한 수준이다. 가짜 발기부전치료제가 일시적으로 원하는 효과는 줄 수 있을지언정 삶의 질을 높여 준다는 ‘해피 드럭(happy drug)’은 분명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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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성일 기자 ivemic@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