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는 사람 살 수 없는 건물?···두 재판부 판단 엇갈려

폐가는 사람 살 수 없는 건물?···두 재판부 판단 엇갈려

기사승인 2013-03-24 15:47:00
인천에 거주하는 염모(44)씨는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 중인 ‘영종하늘도시’의 공원이 조성될 땅에 흉물처럼 방치돼 있는 폐가가 늘 못마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소유의 이 폐가는 지붕도 문짝도 없이 철거될 날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폐가가 주변의 자연경관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한 염씨는 폐가를 태워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5월 어느 날 새벽 염씨는 주변의 쓰레기들을 모아 폐가에 가져다 놓고 불을 질렀다.

불은 폐가까지 번지지 않았다. 폐가의 외벽만 일부 그을리는 정도였지만, 염씨는 폐가에 함부로 불을 놓아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혐의는 일반건조물 방화죄. 1심 재판부는 염씨에게 유죄를 인정했다. 불은 붙지 않았으므로 일반건조물 방화미수를 적용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불을 지를 때 사용한 라이터도 몰수당했다.

폐가를 건물이라고 판단한 판결에 승복할 수 없었던 염씨는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염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주현)는 원심을 깨고 염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건조물은 반드시 사람의 주거용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기거·취침에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며 “이 사건 폐가는 지붕과 문짝, 창문이 없고 담장과 일부 벽체가 붕괴된 철거 대상 건물로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폐가는 건조물이 아닌 ‘물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일반건조물 방화죄와 달리 일반물건 방화죄에는 미수범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무죄를 선고받은 염씨는 몰수당한 라이터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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